오랜 시간 국내 자동차 판매 1위였으나 최근 단종 위기를 겪는 자동차가 있다. 불경기 자동차로 불리며 ‘소상공인의 발’로 유명하다. 소형 상용차종으로 뒤 칸이 넓어 다양한 개조가 가능하다. 여기선 특정 모델 언급이 어려우니 T라 하겠다. T는 창조적이며 슬픈 자동차다. 퇴직금으로 마련한 여생의 삶을 잇는 기계이고 빚에 쫓긴 가장의 마지막 밥벌이다.
나는 T를 자동차 활용도 부문 기네스북에 올리고 싶다. 뒤에 실리는 사업 아이템은 끝이 없다. 떡볶이, 속옷, 잡화, 뻥튀기가 그러하다. 움직이는 분식점이 되고 패션 매장이 된다.
저녁 퇴근길 붕어빵 차로 개조한 T를 오래 두고 봤다. 1000원에 세 마리 가격표는 물가와 상관없이 일정했다. 밀가루, 우유, 팥, 가스 가격 상승과 무관했다. 결국 손님을 잃지 않으려 노동력을 갈아넣어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붕어빵 사장님은 우리나라 소득 하위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고물가에 적은 마진을 버티며 생계를 지속하는 삶의 도구로 많이 팔리는 T는 그래서 경제 불황을 알리는 슬픈 차다.
잘 팔리던 T가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업의 안일함을 지적한다. 과거 T는 계약하고도 몇달을 기다려야 했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니 품질 개선보다는 팔기에 급급했다. 연료 시스템 문제로 시동이 꺼지고 같은 고장이 반복돼도 문제는 빠르게 개선되지 못했다. 최근 출시된 전기차 모델은 주행거리가 문제다. 과연 소비자 운전 환경을 제대로 반영했나 의심스럽다. 1회 충전으로 약 200㎞를 주행할 수 있지만 뒤에 짐을 실으면 절반 정도 주행한다. 특히 겨울에는 배터리 성능이 저하돼 주행거리가 더욱 짧아진다. 여기에 적은 충전소 문제까지 겹치면 정상적인 사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기업은 이런 단순한 문제점을 예측하지 못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결국 팔리지 않은 전기차 모델은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도 이미 외면한 소비자 마음을 돌리기 어려웠다.
정부의 복잡한 행정 절차도 문제다. 보조금 신청과 지급 과정에서의 번거로움은 차종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 올해 지방정부에서 전기차 판매 목표율을 채우지 못한 부분은 이 점을 곱씹어봐야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는 단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T 차종 시장을 중국에 내줄 가능성을 높인다. 중국은 지금도 저가형, 고품질로 전기자동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최근 국내 전기 시내버스 시장을 50% 이상 차지한 기세가 무섭다. 정부가 국내 기업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시행해도 역부족이다. 빠른 시간 내에 현재 상황을 극복 못하면 중국 전기차에 시장을 내주는 것은 시간문제다. 결국 기업과 정부는 지금껏 누려왔던 독과점에 준한 T 차종 시장인 소형 상용자동차 시장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기업은 소비자 입장에 맞춰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여야 한다. 문제 발생 시 적극 AS에 대처해야 하며, 빠른 품질 개선으로 소비자 신뢰를 높여야 한다. 더불어 정부는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소비자 편의를 높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T를 통해 돈을 버는 사장님들께 당부드린다. 무단으로 인도를 점유해 사업을 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생계의 급박함은 알겠지만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사업 전 반드시 관계기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간다. 추운 날씨, 얼어붙은 경제는 겨울을 더욱 춥게 하고 뉴스는 온통 수사와 판결로 세상을 가른다. 인간미가 실종된 사회에서 그나마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오늘도 도로에 내몰려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과 퇴근길 따끈한 붕어빵을 먹을 수 있는 우리 모두에 따뜻한 연말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