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럼프와 지구(2)

더 뜨겁고, 더 위태로운데···‘기후 암흑기’ 시작되나

김희진 기자    최혜린 기자

② 트럼프가 세계에 드리운 그림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지구. 게티이미지·경향신문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지구. 게티이미지·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달 27일. 단풍 위로 첫눈이 내렸다. 가을, 첫눈, 폭설….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이 기사를 뒤덮었다. 11월 서울에 20㎝ 넘는 눈이 내린 건 117년 만에 처음이다. 그 시각 지구 반대편엔 가을 열대야가 한창이었다. 프랑스 남서부 도시에선 54년 만에 가장 더운 26.9도의 밤이 이어졌다.

전 세계에 찾아온 이상기후는 그저 ‘이상한 날씨’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0월 스페인 동남부를 덮친 기습 폭우는 22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3~5월 브라질에선 136명, 케냐에선 228명이 폭우와 홍수에 숨졌다. 7월 미국 동부에선 불볕더위로, 서부에선 허리케인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하루가 멀다고 세계 곳곳에서 ‘기록적’ ‘이례적’ 재해가 닥칠 때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부추긴 일”이란 진단을 내놨다. 실제 올해는 관측 역사상 가장 무더운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올해 1~9월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4도 더 높았다. ‘기후 마지노선’으로 꼽히는 1.5도를 일시적으로 넘어서는 수치다.

기후 위기가 더는 빙하를 잃은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이 시점에 ‘기후 빌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돌아온다. 그가 집권 1기를 시작한 2017년과는 확연히 다른 현실이 우려를 키운다. 7년 사이 지구는 더 뜨거워졌고, 시간은 더 촉박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가 확정된 날 국제사회에선 “기후의 암울한 날”이란 탄식이 나왔다.

1850년 이후 매년 지구 평균 온도를 시각화한 그래프. 파란색은 1971~2000년 평균 대비 평균 이하의 연평균 기온을, 빨간색은 평균 이상의 연평균 기온을 나타낸다.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한 2023년은 가장 어두운 빨간색 줄무늬로 표시됐다. 미국 비영리단체 클리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 자료

1850년 이후 매년 지구 평균 온도를 시각화한 그래프. 파란색은 1971~2000년 평균 대비 평균 이하의 연평균 기온을, 빨간색은 평균 이상의 연평균 기온을 나타낸다.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한 2023년은 가장 어두운 빨간색 줄무늬로 표시됐다. 미국 비영리단체 클리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 자료

세계 2위 탄소 배출국 이끌 ‘기후 빌런’…“미국은 지구의 위협”

‘기후 위기 부정론자’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2기 동안 지구 온난화에 맞서는 세계적 노력을 기존 궤도에서 밀어낼 만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탄소 배출국 미국을 이끌 만큼, 그의 반환경 정책은 미국을 넘어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당장 트럼프 당선인은 또다시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당선인 정권 인수팀이 파리기후협약 재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을 취임 즉시 시행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로 한 국제협약이다.

지구 평균기온 변화 추이. 카본브리프 자료

지구 평균기온 변화 추이. 카본브리프 자료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출범 6개월 만인 2017년 6월 협약 탈퇴를 선언해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영향이 제한적이었던 첫 번째 탈퇴와 달리 이번 재탈퇴는 파장이 더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시엔 발효 후 3년이 지나야 탈퇴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2019년 11월 유엔에 협약 탈퇴를 통보했다. 1년 뒤 공식적으로 탈퇴 처리가 완료됐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재가입했다. 약 두 달 만에 상황이 바로잡힌 것이다. 이번엔 트럼프 당선인이 탈퇴를 원하면 1년 만에 가능하다.

트럼프 집권 2기는 바이든 정부가 수립한 미국의 기후공약을 무시하고, 새 탄소 오염 감축 계획을 제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미국은 이제 지구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마이클 맨 펜실베이니아 기후과학자) “이번 혼란과 피해는 훨씬 크고 오래갈 가능성이 크며 되돌리긴 더 어려울 것”(대니얼 스웨인 캘리포니아대 기후과학자) 등 우려가 나온다.

지난 11월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나제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환경 운동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실루엣을 담은 전광판에 ‘기후 위기는 기후 위기 부정론자를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란 문구를 담았다. AFP연합뉴스

지난 11월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나제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환경 운동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실루엣을 담은 전광판에 ‘기후 위기는 기후 위기 부정론자를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란 문구를 담았다. AFP연합뉴스

영국 기후 에너지 싱크탱크 카본브리프는 트럼프 당선인 재집권으로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40억t 추가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지난 5년간 전 세계적으로 풍력·태양광 등 청정기술을 도입해 얻어낸 총 절감량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카본브리프는 “세계 2위 배출국 미국이 2030년 배출량 감축 목표를 큰 폭으로 달성하지 못하면,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이 모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이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기 위해 1992년 마련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까지 탈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파리기후협약 모체이자 세계 기후회담 기반이 되는 UNFCCC를 탈퇴하는 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국제협력을 크게 흩뜨릴 수 있는 ‘과격한 조치’가 될 것이라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40억톤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이어가게 됐을 경우 예상되는 배출량(2005년 대비 50%감축)과 비교하면 트럼프 당선인 집권으로 예상되는 배출량(2005년 대비 28% 감축)은 크게 늘어난다. 카본브리프 자료.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40억톤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이어가게 됐을 경우 예상되는 배출량(2005년 대비 50%감축)과 비교하면 트럼프 당선인 집권으로 예상되는 배출량(2005년 대비 28% 감축)은 크게 늘어난다. 카본브리프 자료.

트럼프발 ‘반기후 대응 전선’, 유럽 극우와 손잡나

트럼프 당선인의 반기후 행보는 국제사회의 기후 위기 대응 의지를 꺾는 ‘도미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컬럼비아대 에너지전환·자금조달 수석연구원 가우탐 제인은 “(트럼프 당선인의 반기후 조치는)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며 “법적 구속력 없이 신뢰와 리더십에 기반을 둔 협약에서 세계 최대 경제국이 취하는 태도는 다른 국가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기후 목표를 향한 노력’과 ‘화석연료 사용의 편익’을 두고 저마다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 사이 자국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질수록 기후협약은 동력을 잃기 쉽다는 뜻이다. 트럼프 당선인 임기 시작 전부터 기후 위기 대응에 드리운 먹구름이 짙어지는 분위기도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기후 관련 합의가 불발된 배경에 트럼프 당선인이 자리해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친트럼프’ 인사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반대로 G20은 개발도상국의 지구온난화 문제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에서 모색 중인 신규 기후 재원 확보방안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경향신문 경향식 뉴스토랑 <다시 석유·석탄 전성시대? 트럼프가 지구에 몰고 올 기후 재앙🚨> 영상 갈무리. 해당 영상은 기사 아래 첨부된 링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sIEH_1eCqI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경향신문 경향식 뉴스토랑 <다시 석유·석탄 전성시대? 트럼프가 지구에 몰고 올 기후 재앙🚨> 영상 갈무리. 해당 영상은 기사 아래 첨부된 링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sIEH_1eCqI

트럼프 당선인처럼 기후 위기를 ‘거짓말’로 치부해온 밀레이 대통령이 정상회의 참석 전 트럼프 당선인과 비공개 회동을 한 후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총회(COP29) 참석 도중 돌연 철수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국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반기후 대응 전선’을 형성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 당선인 복귀와 유럽 극우 정당의 선전이 맞물리면서 올해 숱한 선거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기후 문제”(정치학자 캐서린 피에시)란 평가도 나온다. 기후 재난이 증가한 한 해였지만 역설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 의지는 침체하거나 약화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가자지구 전쟁, 인플레이션, 포퓰리즘의 부상에 여러 나라에서 기후 문제는 주요 의제에서 밀려났다고 전문가들은 짚었다.

지난 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극우 정당 연합인 유럽보수와개혁(ECR)이 크게 약진하면서 유럽연합(EU) 내 기후 정책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전면 백지화까진 아니더라도 EU가 기후 문제에서 리더 역할을 강화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국내 정세를 봐도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극우 정당이 세력을 키우면서 ‘그린 래시(녹색 정책에 대한 반발)’ 흐름이 확산하는 추세다.

한 기후 활동가가 지난 9월27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글로벌 기후 위기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기후 활동가가 지난 9월27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글로벌 기후 위기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집권 1기 때 기후 대응 침체기를 버티는 데 큰 역할을 한 기후 활동가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기후 위기가 가속한 데 따라 거칠어진 이들의 활동을 두고 유럽 다수 국가가 점점 강경 대응하는 추세를 보이는 일이 우려된다고 국제인권감시기구(휴먼라이트워치)는 지적했다. 기후 활동 자체를 범죄화하고, 형사처벌 수위를 급격히 높이는 게 대표적 예다.

기후활동단체 ‘마지막 세대’ 소속 활동가들은 독일에서 거점 15곳을 압수수색 당하고 범죄단체 결성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오스트리아에선 230건의 형사고발을 겪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해당 지부 활동을 종료했다. 폴리티코는 “유럽의 기후 활동가들이 ‘억압의 물결’에 직면했다”고 표현했다.

트럼프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화석연료는 과거의 유산”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지구에 드리운 그림자가 기후 대응을 위해 국제사회가 쌓아온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순 없을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도 있다. 유럽기후재단의 최고경영자(CEO)이자 2015년 파리기후협약 설계자인 로랑스 튀비아나는 2017년 트럼프 당선인의 협약 탈퇴 선언 당시 어떠한 나라도 미국을 뒤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미국의 부재에도 협약을 지탱할 저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활동가들이 지난 10월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활동가들이 지난 10월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후 전문가들은 나아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강조한다. 청정에너지 기술 패권을 두고 중국과 미국, 유럽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기권’을 선언하고 화석연료로의 완전한 회귀를 선택하는 것은 트럼프 당선인으로서도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이다.

프리데리케 오토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기후과학자는 “세계는 트럼프가 마지막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와 매우 다른 위치에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 중이고, 미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재생 가능 에너지가 석유·가스·석탄보다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트럼프가 기후변화를 부정하더라도 물리학의 법칙은 정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국제 사회에선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기후 리더’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지만, 풍력·태양광 에너지를 놀라운 속도로 전력망에 추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미국 싱크탱크 글로벌 에너지 모니터(GEM)에 따르면 중국은 339기가와트(GW) 규모의 풍력 및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전 세계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건설의 3분의 2에 달하며, 2억50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한다.

국가별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규모. 글로벌 에너지 모니터 자료

국가별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규모. 글로벌 에너지 모니터 자료

중국은 ‘기후 리더’ 요구에 난색하는 분위기지만 국제사회 압박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오 저 그린피스 동남아 글로벌정책 자문은 “중국이 다른 주요 국가들과 함께 전 세계 기후행동을 지속시켜 나가는 데 안도감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다시 석유·석탄 전성시대? 트럼프가 지구에 몰고 올 기후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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