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에 담긴 ‘언론 통제’···무엇을 하려 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선포한 비상계엄에는 언론을 강도 높게 통제·검열하는 내용이 담겼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과거 군사독재 시절과 같은 언론통제와 검열, 탄압이 반복돼 언론 자유가 크게 후퇴할 뻔했다.
지난 3일 오후 11시 계엄사령부가 포고한 1호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포고령에 담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는 문구나 “포고령 위반자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에 의해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문구도 언론에 적용할 수 있다.
비상계엄이 계속 시행됐다면 국내 주요 언론사 대다수에 파견 계엄사령부 검열관이 모든 기사를 사전 검열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기사는 삭제되고, 비판 보도가 나가면 보도책임자와 기자를 “처단(연행·구금·형사처벌 등)”하게 된다.
2020년 <신문과 방송> 4~5월호에 실린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당시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은 신군부 비상계엄 기간인 1979년 10월27일부터 1981년 1월24일까지 456일 동안 27만7906건의 기사를 검열해 1만1033건을 전면 삭제하고 1만6025건을 부분 삭제했다. 하루 평균 610건을 검열해 60건을 전면·부분 삭제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이 보도된 1980년 5월19일부터 6월4일까지는 하루 평균 814건을 검열해 114건을 전체·부분 삭제했다.
당시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은 51명으로 군 정훈병과 등 장교·사병이 24명(47%)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나머지는 합동수사본부와 중앙정보부, 문화공보부, 서울시청 등에서 차출된 공무원이었다. 신군부는 각 언론사에 ‘계엄군 활동과 피해 사항은 공식 발표 외의 보도를 금지한다’ ‘인명피해, 사상자 처리에 관한 개별 취재 내용은 보도 불가하다’ 등 내용이 담긴 보도검열지침을 하달하기도 했다.
신군부는 계엄 해제 이후에도 1985년부터 1986년까지 문화공보부를 통해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 584건을 하달했다. 신군부는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보도할 때 수사기관 발표 내용만 쓰게 하거나, 민정당 전당대회 대통령 치사를 1면 머리기사로 쓰라고 지시했다.
언론계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언론 통제 시도를 강하게 규탄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주요 언론현업단체 9곳(방송기자연합회, 민주노총 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촬영인연합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편집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굽히지 않는 펜’ 조형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위헌적, 위법적 계엄 선포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파괴하고 국민 주권을 유린한 내란수괴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고 오라를 받아라”라고 했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신문기자는 편집 가판을 계엄군에게 검열받고 기사를 내고, 방송사에는 계엄군이 들어와 어떤 진행자가 무엇을 말할지 다 검열했을 것”이라며 “그냥 시나리오가 아니라 40여년 전 우리 선배들이 계엄군 앞에서 했던 그 상황”이라고 했다.
주요 신문사 대부분은 이날 아침 조간신문에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사설을 냈다. 경향신문과 광주일보, 서울신문, 한겨레 등은 호외를 발행했다. 다수 언론사들이 동시에 호외를 낸 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