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만 4편···왜 한국 ‘뮤덕’은 와일드혼에 홀렸나

백승찬 선임기자

지킬앤하이드·마타하리·시라노·웃는 남자

주역의 가창력과 감정 표현 극대화한 노래

논 레플리카 방식으로 현지 관객 선호 충족

뮤지컬 ‘마타하리’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타하리’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이번 겨울 서울 시내 대형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마타하리> <시라노> <웃는 남자>에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출신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66)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지킬앤하이드>는 2004년 한국 초연해 이번에 20주년을 맞았다. 한국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전회 매진’ 기록을 세웠고, 지금까지 총 9번의 정규 프로덕션을 거치며 누적 관객 수 180만명을 돌파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주요 넘버인 ‘지금 이 순간’은 <지킬앤하이드>를 보지 않은 팬들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2016년 초연한 <마타하리>와 2018년 초연한 <웃는 남자>는 모두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이다. 두 편 모두 이번이 4연째다. <시라노>는 2017년 한국 초연해 이번이 3연이다. 이 밖에 와일드혼의 작품은 <드라큘라> <몬테크리스토> <데스 노트> <엑스칼리버> 등 여러 차례 공연된 작품과 지난 6월 한국 초연한 <4월은 너의 거짓말>까지 꾸준히 한국 뮤지컬 관객을 만나고 있다.

와일드혼의 작품은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보다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더욱 사랑받는다. 대표작 <지킬앤하이드>만 해도 브로드웨이에서는 1997~2001년 공연 후 더 이상 무대에서 볼 수 없지만, 한국에선 시즌마다 치열한 예매전이 벌어진다. <지킬앤하이드> <마타하리> <웃는 남자> 등 와일드혼의 주요 작품은 한국의 뮤지컬 시상식에서 주요 상을 받기도 했다. 와일드혼이 토니상, 그래미상 등 미국의 주요 시상식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한 것과 대비된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본인 제공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본인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왜 와일드혼의 작품은 한국 관객에게 유독 사랑받을까. 와일드혼의 작품은 듀엣이나 합창보다는 주역의 솔로 넘버에 극적인 감정과 서사를 부여하는 데 강점이 있다. 이는 주역 캐스팅을 주요한 작품 선택 요인으로 꼽는 한국 관객의 특성과 맞아떨어진다. ‘지금 이 순간’, ‘거인을 데려와’(시라노), ‘마지막 순간’(마타하리), ‘그 눈을 떠’(웃는 남자) 등이 주역의 가창력과 감정 표현을 극대화한 고난도 노래들이다. 와일드혼과 다수의 작품을 만든 EMK뮤지컬컴퍼니 김지원 부대표는 “뮤지컬 창작자에 따라 작곡이 선행할 수도, 극작이 선행할 수도 있는데 와일드혼은 전반적으로 전자”라며 “와일드혼의 음악은 그 자체로 온전한 드라마를 품고 있어 서사를 중시하는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는다”고 말했다.

<시라노>의 김동연 연출은 “주인공의 역량과 매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뮤지컬이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는 경향이 강하고, 이런 뮤지컬에서 와일드혼 음악의 강점이 극대화된다”며 “와일드혼의 음악에는 솔직한 감정에 충실한 멜로디 라인과 파워풀한 엔딩을 통해 관객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2023년 명지대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프랭크 와일드혼 작품의 국내 흥행요인에 대한 연구 분석>에서 전태준씨는 한국 관객이 “선율 중심, 단조, 고음을 통한 감정전달이 실린 음악”을 선호한다며 와일드혼의 넘버가 이 특성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올 겨울에만 4편···왜 한국 ‘뮤덕’은 와일드혼에 홀렸나

이번 겨울 한국에서 공연하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들

이런 노래들은 주역에게 높은 수준의 에너지를 요구해 매일 공연하기는 무리일 수 있지만, 한국 뮤지컬계에는 멀티 캐스팅이 일반적이다. 김 연출은 “높은 에너지를 토해내듯 불러야 하는 와일드혼의 곡들은 하루 이틀 걸러서 공연하며 하룻밤 공연에 모든 걸 쏟아내는 한국 배우들의 특성과 시너지를 낸다”고 말했다. 조승우(지킬앤하이드), 옥주현(마타하리), 박효신(웃는 남자), 김준수(데스 노트) 등이 와일드혼의 작품을 통해 특히 인기를 끌었다.

국내 공연되는 와일드혼의 작품은 한국 제작사 주도로 제작되는 창작 뮤지컬이거나 라이선스의 경우 논 레플리카(원작을 수정·각색·번안해 재구성한 작품) 방식을 취한다. 이는 ‘한국 시장 맞춤형’ 작품이 될 수 있는 요인이다. 와일드혼은 옥주현, 박효신 등 캐스팅된 배우의 성량, 음색에 맞춰 작곡하기도 한다. 김지원 부대표는 “논 레플리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현지에 맞춘 최선의 로컬라이징이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와일드혼 역시 현지 관객의 니즈를 중시하는 작곡가”라고 말했다.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CJ CNM 제공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CJ C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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