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이발사 박씨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이발사 박씨

아파트 5층 높이의 미루나무가 머쓱히 서 있던 신작로에 이발사 박씨가 마을에 등장한 건 1970년대 말. 다섯 살쯤 먹은 한쪽 다리를 절룩이는 사내아이와 함께였다. 버젓한 버스표지판도 없던 그곳에 그들을 내려준 버스는 알감자 같은 흙먼지를 매달고 거칠게 내달리다 소실점 속으로 사라졌다.

대전과 충북 옥천 사이에 지빠귀 둥지처럼 들어앉은 마을을 두 쪽으로 가르며 관통하던 신작로. 박씨는 신작로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집을 얻어 이발관을 냈다. 농사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마을사람들의 아들들이 도시로, 중동으로 돈을 벌러 떠나던 시절이었다.

신작로에는 제법 규모가 큰 방앗간과 가게가 꼭 붙어있었다. 방앗간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은 보름달처럼 노란 양철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사러 가게로 향하곤 했다. 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까지 나가 이발하던 사내들은 제법 버젓한 박씨의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고 수염을 다듬었다. 아이들도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다.

얼마 후 사내아이가 박씨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에 의하면, 군대시절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병이 들자 아내가 아들을 떼놓고 집을 나갔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안 친구는 박씨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총각이던 이발사 박씨는 친구의 아들을 데려와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아들로 삼았다. 30대 초반으로 말수가 적고 순한 박씨는 훤칠하고 인물이 좋았다. 흰 가운을 입고 신작로에 나와 서 있는 모습은 제법 근사했다.

하루 두 차례 버스가 신작로를 지나갔다. 옥천 쪽으로 가는 버스는 이발소를 조금 지나 혹은 조금 못 미처 정차했다.

봄이 되고 신작로로 흰 상여가 지나갔다.

가을이 되고 방앗간의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참새들이 방앗간 양철지붕과 전선줄에 빼곡히 내려앉았다.

어느 날 신작로에 웬 여자가 고만고만한 아이 넷을 데리고 나타났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머리를 파마하고, 부지깽이처럼 마른 여자는 방 하나를 얻어 아이 넷과 마을에 정착했다. 여자는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함구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넷이나 달고 친척 하나 없는 낯선 마을로 흘러들었는지 또한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경상도 출신이라는 것 말고 여자에 대해 짐작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박씨에게 아내가 없다는 걸, 박씨의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여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발관으로 향했다. 박씨는 여자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네 아이를 조용히 제 식구로 받아들였다. 둘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부부로 살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이발사와 여자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자, 박씨가 불임이라는 소문이 잠깐 마을에 돌기도 했다.

하루 세 차례 버스가 신작로를 지나갔다. 네 차례, 다섯 차례, 여섯 차례. 박씨는 한결같이 말수가 적고 순했다.

눈 깜짝할 새 50여년이 흐르고 ‘마음교차로’라는 표지판이 신작로에 내걸렸다. 미루나무는 진즉에 베어지고 없었다. 방앗간도 10년도 더 전에 뜯겨 없어지고 조립식 집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신작로로 흰 상여가 나가던 풍경은 흑백사진 속 풍경이 됐다. 신작로 주변으로 물류 창고와 가내수공업 공장과 비닐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이발관 간판이 사라지고 편의점 간판이 떠올랐다. 편의점 주인은 여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편의점에서 콜라나 라면 같은 걸 사갔다. 쉰 살이 넘은 아들은 때가 되자 버스를 타고 박씨를 떠났다. 여자의 아이들도 자라서 하나둘 버스를 타고 떠났다. 여든이 넘은 박씨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순했지만 가위를 들지 못할 만큼 몸이 늙고 쇠약해졌다. 박씨와 여자의 등장을 지켜봤던 마을사람들은 긴 세월 동안 여자의 친인척이 여자를 찾아오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여자의 과거는 여전히 비밀에 묻혀있었다. 여자가 세상을 떠났다. 여자의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올 줄 알았던 박씨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요양원으로 갔다는 소식만 여자의 딸 입을 통해 전해져왔다.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