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최애의 아이

인아영 문학평론가

만약 좋아하는 아이돌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 이하로 예상되는 시대에 이희주 소설가의 단편소설 ‘최애의 아이’(<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인기 남자 아이돌의 정자가 인공수정 시술용으로 판매되는 사회가 배경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우미는 자신의 ‘최애’ 아이돌인 유리의 정자가 공여되었다는 소식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냉철하게 결정한다. 아름다운 유리의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이 대담한 선택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첫째,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불려왔던 젊은 여성 팬의 사랑은 이희주의 소설에서 더 이상 모호하거나 미성숙한 감정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정서적, 성적, 미학적 취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쾌락의 기술이다. 또한 성숙하고 현실적인 이성애 관계에 돌입하기 전에 거치는 예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관계성을 실험하는 역동적인 장이다. 우미는 외모가 훌륭할 뿐 아니라 때 타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유리의 우월한 유전자를 ‘굿즈’로서 보존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우미에게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향한 헌신과 다름이 없다.

둘째, 재생산에 대한 욕구. 우미는 평생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면서 삶의 영양분을 채워왔지만 이제는 좀 더 직접적이고 생생한 산물, 즉 그 ‘아름다운 것’의 아이를 원한다. 이것은 그 사랑으로 인한 물리적인 결과물을 손에 넣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에 가깝다. 그 결과물이 자신의 살아 있는 육체를 경유한 또 다른 생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마음 아닌가요?”

셋째, 정부의 인구 정책과 정자 상품화. 국민에게 우수한 정자를 상품으로서 제공하는 미혼 출산 지원 정책이 없었더라면 우미는 인공수정을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남성의 섹슈얼리티 상품화에 한국 사회는 보수적인 편이지만 비혼 출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논점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여성이 아이를 갖고는 싶지만 실질적인 남편을 원하지는 않으며 조건이 맞는 정자라면 기꺼이 구매할 의사가 있다면? 물론 자본주의와 우생학이 결합한 국가 주도의 재생산 기획에 가임기 여성들이 차출되면서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디스토피아까지 이 소설은 암시하고 있지만, 이 세 번째 층위에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진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의제는 임신, 출산, 양육을 몸으로 겪어야 하는 여성들의 선택권이다. 여전히 여성의 신체를 출산에 복무하는 도구로 여기는 사회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가야 할 길은 요원하다. 원치 않는 임신을 중지할 권리조차 합법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여성들의 정서적, 성적, 미적 취향을 반영하는 정자를 공급한다는 미적 기획은 급진적인가? 그러나 거의 모든 보조 생식 기술 및 의학이 배란, 수정 단계의 여성 신체를 인공적으로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에 따르는 신체적인 고통과 건강 악화는 여성 개인의 부담으로 처리하는 사회에서 이는 급진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늦된 기획이 아닐까. 문제는 단지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차별 없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가, 혹은 출산한 여성의 일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들의 다양한 정서적, 성적, 미적 취향에 따라 행복할 권리를 아우르지 않는 한, 미래를 위한 인구 정책은 없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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