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하기보다는 잘하고 싶어서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전 세계 개발자와 창업가들이 시제품 정도의 애플리케이션을 올려 사용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플랫폼이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된 지난 2년 동안 이 사이트를 문지방 닳듯 들여다보며 제품 타깃의 변화를 봤다. 데이터로 분석해보면 재밌는 게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1월까지의 데이터 6만여건을 모아 분석해봤다. 이 가운데 ‘오늘의 제품’으로 꼽히는 최소 요건인 1000건을 득표한 제품들을 뽑아보니 딱 300개가 나왔다. 시계열로 어떤 기능의 제품들이 더 관심받고 덜 출시됐는지 알고 싶었고, 맥락적으로 분류 참 잘하는 챗GPT와 함께 거칠게 데이터를 군집별로 쪼개봤다.

총 6개의 클러스터가 나왔다. 이 중 20개월 내내 높은 비중을 보였던 군집은 조직에서의 특정 업무를 빠르게 돕는 B2B 제품들이었다. 웹사이트를 생성하고 팀 협업을 하고 정보 관리를 하는 도구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기업 생산성 측면에서 AX를 하려는 타깃을 노린 제품이 많았고, 얼리어답터인 사용자들은 이런 제품들을 빠르게 써보고 평가했던 것 같다.

초기에는 수가 많았지만 뒤로 갈수록 주춤해진 군에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코딩을 지원하는 도구들이 있었다. 개발자의 편의를 높이는 제품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대형 기술 회사들의 제품들이 더 세세한 개발까지 아울러 도울 수 있게 되면서, 작은 제품들의 인기가 점차 줄어든 것은 아닐까 싶다. 콘텐츠 창작 제품들도 초기엔 인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 수가 다소 줄어든 군집이다. 챗GPT, Claude 같은 제품들의 성능이 워낙 좋아졌고, 이미지, 음성, 비디오에서도 고효율 고성능 제품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관련 시제품 출시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 듯하다.

반면 비슷한 성격의 군집인 마케팅 도구들은 외려 최근 수가 늘고 있다. 개인 크리에이터는 물론 중소규모 조직들의 AI 활용이 특히 미디어 관점에서 빠르게 검토되면서 관련 도구에 대한 수요가 느는 건 아닐지, 도구마다 한 끗 디테일 차이가 빅테크와 차별점을 크게 벌리는 건 아닐지 생각해봤다. 그 외 개인정보보호 관련 군집이나 정보 통합에 중점을 둔 군집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출현 빈도를 보였다. 기술적 난도가 높고, 규제가 얽혀 있으며, 이 플랫폼의 성격과 살짝 거리도 있고, 문제의 시급성이 아직 덜 도드라진 것으로도 보인다.

이 플랫폼의 투표수를 아주 순수한 평가 지표로 삼기는 어렵다.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해서 꼭 성공적인 제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숨겨진 보석 같은 애플리케이션들도 분명 숨어 있다. 다만 생산성의 측면에서 달성해야 할 지표(KPI)가 비교적 명료하며, 기술 장벽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도메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디테일에서 승부를 보는 제품들은 꾸준히 출시되고 사용자들에 의해 탐색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기술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일을 덜 하는 것보다, 지금보다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도구들. 그로써 시너지를 내도록 만드는 제품들에, 우리는 조금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세상은 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발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매우 낙관적인 상상을 슬쩍 해본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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