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의 국민연금 졸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다음주면 2024년 정기국회가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올해 연금개혁도 물 건너간다. 지난 9월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발표한 후 국회에서 논의가 본격 이어질 줄 알았으나 헛된 기대였다. 정부 개혁안이 구체적이고 여러 논점을 제시한 만큼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를 보완하고,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며 서로 이견을 좁혀가야 하건만, 실질적 논의는 없이 연금개혁위원회를 어떻게 꾸릴지에 대해 공방만 벌이다 또 한 해를 허탕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미래 재정이 불안정한 국민연금을 두고서 이토록 안이할 수 있다니. 사실 이번 22대 국회만이 아니다. 소득대체율을 낮추었던, 국민연금의 마지막 개혁이 노무현 정부 2007년에 있었으니, 정치권은 지난 17년 동안 국민연금 개혁을 방치해 왔다.

국민연금 개혁 의제는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보장성 개혁은 대체적으로 방향이 잡혀 있다. 국가의 지급보장, 연금크레딧 확대,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등으로 목소리가 모아지고,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여부도 논란은 많으나 여야의 수치 차이가 좁혀진 상태이고, 앞으로 가입기간을 늘리는 방안이 뒤따를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과 함께 법정 의무연금인 기초연금이 자리를 잡아가고, 퇴직연금도 규모를 키우고 있어 보장성에서 ‘연금삼총사’가 구축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 개혁에서 절박한 핵심과제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보험료율 인상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 무척 빠른 고령화라는 인구환경도 불리하지만, 국민연금 재정불안의 근본 원인은 기여와 급여의 수지불균형, 즉 낮은 보험료율에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에 부합하는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약 20%이다(임금상승률 할인 적용). 국민연금기금이 지닌 수익을 감안하더라도 미래 재정안정을 위해선 현행 9% 보험료율을 상당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이는 연금선진국 제도만 봐도 명확한 사실이다. 현재 독일의 공적 소득비례연금은 한국과 동일하게 가입기간을 40년으로 환산하면 소득대체율 39%를 적용받으며 보험료율 18.6%를 납부하고, 스웨덴도 소득대체율 40.8%에 보험료율 18.5%를 기여하고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9%는 언제 정해진 걸까?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부터이다. 당시 국민연금법은 가입자의 부담을 고려하여 처음에는 3%로 시작하나 10년 후인 1998년에 9%에 도달하는 내용을 미리 부칙에 정해놓았다. 즉, 9%는 36년 전에 국민연금법에 정해진 수치이고, 적용에서는 1998년 이래 26년 동안 멈추어 있다. 그래서 올해 연금개혁 논의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 13%로 의견이 모아진 것은 중요한 성과이다. 연금개혁의 범위는 일부 수치를 조정하는 모수개혁부터 제도 틀을 바꾸는 구조개혁까지 넓으므로, 우선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여야가 절충하는 모수개혁을 마무리했어야 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하루라도 빨리 보험료율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국민연금에서 보험료는 가입자 지위일 때 내는 돈이다. 다수 가입자가 국민연금 의무가입연령인 59세를 넘어 버리면 이때는 보험료율을 올려도 재정안정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국민연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1955년부터 1974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166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중 1963년생까지 1차 베이비부머 705만명은 어느새 국민연금 가입자 신분을 졸업하였고, 올해부터 보험료 납부 의무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차 베이비부머도 이제 50대여서 보험료율을 올려도 적용받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보험료율 인상의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9%가 법에 명시된 지 36년, 실제 9%가 적용된 지는 26년, 국민연금 개혁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지는 17년이다. 이 기간 인구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부분 나라들이 연금개혁을 통해 미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고 있건만, 우리나라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국민연금 재정 불안이 심각함에도 말이다.

이렇게 연금개혁이 또 한 해를 넘어간다.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계기로 2022년에 활동을 시작한 정부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기준으로 보면 또 2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베이비부머 가입자들은 계속 국민연금을 졸업하고 이들이 남긴 재정 부담은 젊은 가입자들에게 집중된다. 국민연금이 지향하는 ‘세대 간 연대’의 우리나라 현주소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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