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지시 따를 뿐” 취재 기자도 강제로 끌어내…계엄 해제 의결 소식에 일부 병력 주춤하는 모습도

문광호·이유진·박하얀·민서영 기자

기자가 겪은 ‘그날 밤’

“통제구역입니다. 다칠 수도 있으니까 나가세요. 나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3분 전인 4일 0시44분, 계엄군은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3층 복도를 통제했다. 군인들은 야당 보좌진, 당직자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와 인간 띠를 돌파하기 위해 물리력 사용도 불사하는 듯했다.

기자는 노트북을 펼치고 상황 스케치를 준비했다. 그러나 총을 든 계엄군들은 기자와 국회 직원들의 퇴거를 요청했다. “취재하려 한다”고 저항하자 그들은 양쪽에서 팔을 잡은 채 강제로 문밖으로 기자를 옮겼다. 몸부림치던 와중 개머리판에 머리를 부딪치고서야 잠시 내버려두는 듯하던 군인들은 괜찮냐고 물은 뒤 다시 기자를 끌어냈다.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국회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3일 오후 10시23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부터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까지 군과 의원들 중 누가 더 먼저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느냐가 관건이 됐기 때문이다.

오후 11시38분 휴가에서 급히 복귀해 도착한 국회는 이미 경내 진입을 시도하는 정치인, 보좌진 및 당직자, 시민들로 붐볐다. “계엄 해제”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함성을 이루고 있었다. 헬기 소리가 눈발 사이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부터였다. 국회 출입기자증을 제시해도 “계엄이라 못 들어간다”고 하는 통에 출입은 쉽지 않았다. 담을 넘자 본청으로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본청 입구는 야당 보좌진, 당직자, 국회 직원들이 군인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4일 0시30분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앞 복도에서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의 문을 열어보니 군복에 얼굴을 가린 계엄군이 총을 파지한 채 진입하고 있었다.

10분가량 지난 0시40분쯤 내부에서 오와 열을 맞춘 군인들은 문을 벌컥 열어 취재진을 밀치며 나왔다. 본회의장으로 향하던 계엄군은 야당이 만들어둔 바리케이드와 소화기 살포에 후퇴해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계엄군의 진입 시도는 번번이 저지됐다.

그사이 본회의에 출석한 의원 190명은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계엄군의 진입 시도는 계속됐다. 군인들이 문을 부수자 “사람 불러,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비명이 나왔다. 흔들리는 가벽을 붙든 보좌진과 당직자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계엄군은 예상 외 저항과 계엄해제 의결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군인들은 물리력을 사용하면서도 “지시사항을 따른 것뿐” “매뉴얼대로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 계엄군은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며 기자들에게 “다친 데는 없냐”고 묻기도 했다. 야당에서 표결 결과를 알리며 “역사의 죄인이야”라고 비판하자 일부 군인들은 뒤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국회 직원이 나가는 길을 안내하자 한 군인은 경례로 감사를 표하고는 국회를 빠져나갔다.

국회 밖 상황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비상계엄 해제 의결에도 국회 경내 진입은 안 된다는 경찰 무전이 들렸다. 밖에서 대기하던 시민들은 군인들이 국회를 빠져나오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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