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급변에 ‘10일까지 합의’ 의장 중재안 안 지켜질 가능성
민주당, 단독으로라도 연내 통과 목표…세법 개정 등 불투명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 역풍을 맞을 조짐이 보이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여야 간 대치가 가팔라지면서 야당 단독으로 감액한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해제한 4일 “계엄 사태가 정리된 이후에 예산도 논의할 수 있다”며 “지금 예산을 얘기하긴 너무 한가하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야에 오는 10일까지 예산안에 합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산안 논의는 이미 법정처리 기한인 지난 2일을 넘겨 교착상태에 빠졌다.
윤 대통령은 전날 계엄령을 선포한 주된 이유로 야당의 ‘예산 폭거’를 들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예비비와 특수활동비를 삭감한 예산안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통과시키자 “국가의 본질적 기능이 마비됐다”고 비판했다. 야당 단독 예산안이 예결위를 통과한 전례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국회법 절차에 따른 것으로 계엄령 선포의 이유가 될 순 없다는 지적이 여당에서도 나왔다.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야당이 법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했는데,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계엄령 사태는 6시간30분 만에 해제됐으나 대통령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졌다. 탄핵 정국으로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여야 간 예산안·예산부수법안 물밑 협상이 전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도 “야당이 단독 예산 감액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증액 협상도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삭감된 예산안이라도 연말 내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여당이)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으면 감액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법상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예산안을 삭감만 할 수 있고 증액은 할 수 없다. 이에 야당 단독으로라도 677조4000억원 규모 정부안에서 4조1000억원을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의 본회의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삭감안을 먼저 통과시킨 후 ‘민생 예산’ 확보를 위해 내년 초에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추진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여야 대치가 연말을 넘겨 준예산 사태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준예산이란 정부 회계연도 개시일인 내년 1월1일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으면 전년도에 준해 일단 예산을 집행하는 것을 뜻한다. 다만 민주당은 현재 준예산 상황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정부의 올해 세법 개정안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여야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는 동의했으나,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등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금투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을 담은 별도 세법 개정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