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발동부터 해제까지 ‘대통령 폭주’ 못막나···“국회 의결정족수부터 낮춰야”

이창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튿날인 4일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출입을 막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튿날인 4일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출입을 막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비상계엄령을 전격 선포했다 6시간 만에 해제한 사태가 발생하면서 비상계엄령 관련 법과 제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상계엄 발령부터 해제까지 모든 결정이 거의 전적으로 윤 대통령의 주관적 판단에 따랐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하면 복잡한 견제장치를 두는 건 쉽지 않다면서도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정족수 완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법 전문가들은 5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현행 법·제도 아래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비상계엄 발령부터 대통령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결정을 견제할 장치가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헌법 77조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를 계엄의 발동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 자의적으로 “지금이 비상사태”라고 규정하더라도 계엄 선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 사유가 적절한지는 헌법상 국무회의 사전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긴 하다”면서도 “이번 사례를 보면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위헌적 계엄 선포를 막는 사전 장치로서 역할을 못한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다만 계엄의 본질적 성격을 고려하면 일정 부분 ‘대통령의 결단’에 맡기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 연구자는 “전시나 사변이 터질 경우 그것이 계엄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사법기관이나 국회에서 심사토록 하는 게 오히려 적절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계엄 선포 이후에도 대통령 결정을 견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헌법과 계엄법은 국회만이 유일하게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 외에 계엄 해제 판단은 오직 대통령만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면 폭주를 막을 수단이 없다.

전문가들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가 대통령에게 계엄 해제를 요구하려면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하는데, 이 기준은 1972년 유신헌법 제정 당시 도입됐다. 그전까지는 헌법상 일반 안건에 대한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를 따랐다.

임 교수는 “계엄군이 국회의원의 본회의장 입장 차단을 시도한 상황에서 하늘이 도와 정족수를 맞춘 것”이라며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가결 정족수를 원래대로 일반 정족수로 바꾸는 것이 우선 시급하다”고 말했다.

계엄 발령 횟수 제한이 없다는 것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윤 대통령은 국회 요구에 따라 계엄을 해제했지만 언제든 계엄을 다시 선포할 수 있다. 이 역시 현행법상 제재할 근거는 없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또 계엄을 선포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며 “다만 상식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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