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비겁한 국무위원들

이명희 논설위원
지난 11월14일 이른바 ‘충암고 라인’으로 불리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 11월14일 이른바 ‘충암고 라인’으로 불리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100여년 전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한 말인데, 관료는 ‘정치’가 아닌 ‘행정’을 하는 집단이란 의미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 관료의 본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표현이 한국으로 와선 정권 입맛에 맞춰 일하는 관료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그러나 잘못된 권력의 지시에도 무조건 따른다면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게 된다.

지난 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법적 절차인 국무회의를 열었다. 문제는 국무회의가 정상적으로 열렸는가이다. 국무회의는 국무위원 과반 출석, 출석 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하지만, 계엄법은 의결이 아닌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국무회의가 개의하려면 대통령을 포함, 21명의 국무위원 중 최소 11명은 참석해야 한다. 현재 면직된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약 절반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6명은 참석 여부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내란죄 혐의를 받는 대통령이 계엄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 정족수를 채우지 않았다면 ‘절차상 위반’ 혐의가 추가된다. 그렇다면 국무회의에 참석한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할까봐 쉬쉬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기는커녕 사실 확인조차 기피하고 있다. 이상민 장관은 5일 국회에 출석해 “반대를 표명한 장관은 두어 명 정도였다”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몸을 던져 막은 장관들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샤워실의 바보’라는 비유가 있다.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지자 꼭지를 반대로 돌렸는데 차가운 물이 쏟아져 샤워는 못하고 나온 바보 얘기다. 샤워기 꼭지를 정신없이 돌리던 정부가 화 난다고 계엄령을 내려 꼭지를 부숴버리려고 했다. 그래놓곤 나 몰라라다. 대통령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 총리·장관들은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있다. 아무리 관료가 영혼이 없다지만, 이 정도인가 싶다. 무능한 데다 비겁하기까지 한 국무위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안 그래도 국민은 울고 싶은데 제대로 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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