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친위 쿠데타에 실패한 대통령 윤석열이 이튿날 여당 지도부를 만나서 했다는 말이 가관이다. “야당에 경고하려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취지였다.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았고, 국회의 계엄령 해제 결의도 수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후안무치한 변명이다.
국회 출입을 막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계엄사령부가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한 것을 국민 대다수가 목격했고 그 증거도 차고 넘친다. 국회의장은 국회 담을 넘어 들어가야 했고, 한 의원이 경찰과 실랑이를 했지만 결국 국회에 못 들어갔다. 계엄군이 국회의장, 정당 대표 등 10여명의 체포명단을 만들고 실행하려고 움직인 상황이 국회 CCTV에 기록돼 있다. 윤석열 자신도 여당 대표가 “왜 나를 체포하려고 했느냐”고 묻자 “정치활동 금지라는 계엄 포고령 위반 때문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이 김용현 국방장관을 문책 해임하지 않고 사의를 수용한 것도 대통령 자신에게 내란죄 최종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국회가 계엄령 해제 결의를 하고 대통령이 수용한 것은 시민 민주주의의 승리인데, 이를 자기 잘못에 대한 경감 사유로 삼으려는 것도 뻔뻔하다. ‘야당에 경고하려 했다’는 말로 국헌 문란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국민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기 살 궁리만 하면서 외교안보 위기도 키우고 있다. 우선 한·미관계가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연일 동맹국 정상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4일 계엄 선포가 “심대한 오판”이었고 “매우 문제 있고 불법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4~5일 워싱턴에서 예정됐던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를 위한 제1차 NCG 도상연습을 연기했다. 북한 핵 위협에 확장억제 강화로 대응한 것을 성과로 내세워온 정부로서는 타격이다. 일본도 윤석열과 거리를 두고 있다. 수교 60주년에 추진되던 일본 총리의 내년 1월 방한 논의가 중단됐다. 세계 각국이 한국 여행주의보를 발령하고 한국과의 정상외교 일정을 잇달아 취소하면서 한국이 국제 제재를 받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은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아니라 문제 그 자체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가진 권한이 너무 많다. 그가 군을 동원해 또 무슨 짓을 할지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군은 철통같은 대북 대비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군 통수권자가 군사모험주의로 가려는 조짐을 보이면 단호히 거리를 둬야 한다. 윤석열이라는 불확실성을 속히 제거해야 하지만, 그때까지는 관료들이 국회, 정당의 통제하에 필수불가결한 일만 해야 한다. 군과 관료들이 충성할 대상은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