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차마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나오는 말이다. 글 쓸 때 부사로 멋내려다 오히려 문장이 엉망이 되는 걸 경계하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장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있다고 안 쓰는 건 쉬운 일이긴 하겠으나,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잘 쓴 부사 하나 사람의 마음을 몽땅 훔치며 글의 격을 높이기도 한다.

얼마 전 발표된 가톨릭 사제들의 시국선언을 또 꺼내 읽는다.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붙인 제목부터가 참으로 쩌릿하게 마음을 울린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이어지는 본문이 모두 명문장이다.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민심의 아우성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천주교 사제들도 시국선언의 대열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것. 이는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낙동강 파수꾼으로 불리며 민족문학의 한 봉우리로 우뚝한 요산 김정한(1908~1996). 일제의 발악에 절필한 선생은 쉰여덟의 나이에 <모래톱 이야기>로 문단에 복귀한다. 이때 다시 붓을 든 소회를 밝히는 대목은 지금 읽어도 뭉클하다. “이십 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지겹도록 오래 꾹 참아 왔었지만, 독재 권력에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되, 마치 남의 땅 이야기나 옛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 따라지들의 억울한 사연들에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는 것. 나날이 몰려오는 어찌할 수 없는 저 심사를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차마. 부사. 부끄럽거나 안타까워서 감히.” 어쩌면 우리는 맨얼굴로 세상에 나왔다.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사연은 다 달라도 그런 존재들이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은 맹자가 논한 정치학의 한 요체이기도 하다. 정치의 치(治)는 다스린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치유한다는 뜻도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에는 ‘부사’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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