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차마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나오는 말이다. 글 쓸 때 부사로 멋내려다 오히려 문장이 엉망이 되는 걸 경계하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장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있다고 안 쓰는 건 쉬운 일이긴 하겠으나,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잘 쓴 부사 하나 사람의 마음을 몽땅 훔치며 글의 격을 높이기도 한다.

얼마 전 발표된 가톨릭 사제들의 시국선언을 또 꺼내 읽는다.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붙인 제목부터가 참으로 쩌릿하게 마음을 울린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이어지는 본문이 모두 명문장이다.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민심의 아우성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천주교 사제들도 시국선언의 대열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것. 이는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낙동강 파수꾼으로 불리며 민족문학의 한 봉우리로 우뚝한 요산 김정한(1908~1996). 일제의 발악에 절필한 선생은 쉰여덟의 나이에 <모래톱 이야기>로 문단에 복귀한다. 이때 다시 붓을 든 소회를 밝히는 대목은 지금 읽어도 뭉클하다. “이십 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지겹도록 오래 꾹 참아 왔었지만, 독재 권력에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되, 마치 남의 땅 이야기나 옛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 따라지들의 억울한 사연들에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는 것. 나날이 몰려오는 어찌할 수 없는 저 심사를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차마. 부사. 부끄럽거나 안타까워서 감히.” 어쩌면 우리는 맨얼굴로 세상에 나왔다.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사연은 다 달라도 그런 존재들이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은 맹자가 논한 정치학의 한 요체이기도 하다. 정치의 치(治)는 다스린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치유한다는 뜻도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에는 ‘부사’만 있는 게 아니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