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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사과가 필요하다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하면서 가장 바꾸기 어려웠던 생각은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사실이었다. 크기가 똑같고 상처 하나 없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사과란 자연 상태에서 불가능하며, 못생기고 울퉁불퉁하고 벌레 먹은 사과야말로 건강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상품을 고르듯 자연을 대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철학>에서 이진경, 최유미는 경제학의 식민주의에 빠진 세태를 비판한다. 생태적 가치, 미적 가치, 기술적 가치, 공동체적 가치 등 다양한 척도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경제적 가치, ‘얼마나 돈이 되는가’만을 기준으로 선택되고 도태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과학적 형식으로 구성된 지식일 뿐 과학적이지 않은 미신에 가깝다면서, 경제학의 미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반시대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학과 다른 척도의 다른 계산의 방법을 찾아, 생산과 구매로 인해 파괴되는 것들의 가치를 계산해야 한다고 말이다.

경제성만을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상품으로 만들었다. 동물도 식물도 상품으로 태어나 전시되고, 팔렸다가, 반품되고, 버려진다. 인간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상품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상품처럼 회사에 팔려, 상품으로 살아간다. 학문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대학은 당장 돈이 안 되고 인기가 떨어지는 학문은 버리고 더 인기가 있는 과목을 들인다. 돈이 되는 농작물을 심고 돈이 되는 고기를 기르기 위해 다양한 생물종이 살고 있는 숲을 파괴하듯이, 돈 되는 것들에 밀려난 대학의 생태계도 균형을 잃었다.

공동체의 문제를 탐구하며 사회의 병증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건네던 사회학이, 가부장제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 여성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여자대학이 폐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경제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못생긴 사과처럼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못생긴 사과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오히려 당도가 높다는 사실, 당도가 낮건 높건 그 사과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존재하므로 존재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못생긴 사과는 돈이 되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 것이 사라지는 일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기에.

너무 많은 물질적 풍요로움이 지구를 죽이고 있다. 지금 지구에 필요한 응급조치는 사유하는 힘이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사유할 필요가 우리를 사유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유가 쫓겨나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긴급하게 사유가 요청되는 시기가 아닐까? 사유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못생긴 사과가 아닐까?

정신적 가치를 저버리고 물질적으로만 풍족한 사회는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재난에 대처할 예산과 기술을 마련하는 일과 함께 이를 운용할 지혜가 긴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잔인하고 냉혹한 경제적 허언들과 겨룰 힘과 사랑의 언어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와 기업에 일침을 날릴 수 있는 사회학의 통찰이, 돈 안 되는 것들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개발주의자들에게 싸움을 걸 페미니즘의 용기가!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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