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따라 사그락사그락 들리나요, 순백의 속삭임…평창은 겨울이 제맛

평창 | 글·사진 김수진 여행작가
1960년대에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스님과 신자들이 두 절을 오가던 길이었던 선재길. 연중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특히 겨울 풍경이 백미로 꼽힌다.

1960년대에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스님과 신자들이 두 절을 오가던 길이었던 선재길. 연중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특히 겨울 풍경이 백미로 꼽힌다.

“내일 아침 하얀 눈이 쌓여 있었으면 해요. 그럼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려드릴게요.” 가수 자이언티와 이문세는 ‘눈’이란 노래에서 눈이 오면 차를 내려준다고 했다. 여러분은 내일 아침 하얀 눈이 쌓여 있으면 무얼 할 텐가? 필자는 평창으로 떠날 테다. 눈으로 뒤덮인 눈부신 평창을 마주하기 위해 꼬박 일 년을 기다렸으니깐.

도깨비도 혜원도 걸었던 그 길, 오대산 선재길

눈꽃 따라 사그락사그락 들리나요, 순백의 속삭임…평창은 겨울이 제맛

첫 목적지는 월정사, 좀 더 엄밀히 얘기하자면 오대산 선재길이다. 선재길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9㎞(월정사 일주문을 기준으로 삼으면 10㎞) 길이의 숲길이다. 1960년대에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스님과 신자들이 두 절을 오가던 길이었고 지금은 트레킹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9~10㎞라는 짧지 않은 코스지만 전체적으로 길이 완만하고 청정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연중 탐방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린 신록과 봄꽃이 함께하는 봄부터 시원한 계곡과 짙은 그늘이 어우러지는 여름, 화려한 단풍 행렬이 이어지는 가을, 환상적인 설경이 아찔한 겨울까지, 선재길의 모든 날은 눈부시다. 어떤 계절에 방문할지는 순전히 개인 취향에 달렸겠지만, 겨울의 선재길을 꼭 한 번 마주하길 권한다. 흔한 겨울날 속 흔치 않은 겨울 풍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 속하는 평창에서 눈은 흔한 겨울의 일상일 터. 그런데 그 눈이 천년 고찰인 월정사와 상원사, 국내 3대 전나무 숲길로 꼽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 한 치의 오염도 허락되지 않을 듯한 오대산 산길과 만나면 흔치 않은 풍경을 완성한다.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이랄까. 뛰어난 영상미로 호평을 얻은 드라마 <도깨비>와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선재길을, 그것도 겨울의 선재길을 촬영지로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게다가 선재길은 친절하고 포용적이다. 눈꽃 트레킹은 산악 고수들이나 즐기는 비범의 영역이라고 여기며 지레 겁먹었던 초보자들까지 보듬어준다. 대부분 구간이 평지로 되어 있어 누구나 가볍게 걸어볼 만하다. 또한 중간중간 버스정류장이 있어 원하는 구간만큼만 걷고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된다(단, 버스가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므로 미리 시간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마저도 부담스럽다면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만 걸어도 괜찮다. 아름드리 전나무 1700여그루가 우거진 숲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날,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걸어보자. 비록 우리가 공유나 김고은, 김태리는 아니어도, 제법 그럴싸한 장면이 연출된다.

겨울날 동심 여행, 무이예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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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길에서 감성 여행을 즐겼다면 이번에는 무이예술관으로 동심 여행을 떠날 차례다. 무이예술관은 1999년 문을 닫은 무이초등학교를 개조한 공간으로, 조각가 오상욱, 서양화가 정연서, 서예가 이천섭 등의 예술가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겹겹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시골 학교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교실은 전시실로 탈바꿈시켰다. 이 때문인지 정겹고 포근한 분위기가 공간을 감싼다.

겨울은 무이예술관의 동심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겨울 체험 시즌이 시작되면 얼음 썰매 체험장이 문을 연다. 조각공원 둘레를 따라 약 160m 길이의 얼음판이 조성되어 신나게 얼음을 지치며 놀 수 있다. 썰매를 타고 달리는 사이사이 설경과 조각품을 감상하는 재미는 덤.

썰매를 타다 출출해지면 예술관 내 카페로 향하자. 구색 맞추기용으로 대충 공간만 차지하는 그런 카페가 아니다. 재료와 맛에 신경 쓴 마실거리와 먹거리를 선보인다. 그중 대표 메뉴는 봉평 감자 피자. 봉평산 감자를 넣어 화덕에서 구워내는 피자는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이미 입소문을 타 피자를 먹으러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

무이예술관의 꽃인 전시관 관람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예술관 설립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다채로운 기획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메밀꽃을 그려온 정연서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는 사시사철 소금을 뿌려놓은 듯 메밀밭이 펼쳐진다.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까지 와서 메밀꽃을 못 보고 가는 겨울 여행자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평창 겨울 풍경의 백미, 대관령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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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평창을 찾는다면 대관령은 무조건 들러야 한다. 강원도를 영서와 영동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는 대관령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고원 지대로 이국적인 정취를 뽐낸다. 대관령의 풍경미를 완성하는 주요 요소는 목장. 대표적인 곳으로는 삼양라운드힐과 하늘목장, 대관령양떼목장이 있다.

지난해 삼양목장에서 이름을 변경한 삼양라운드힐은 국내 최대 규모 목장으로 꼽힌다. 드넓은 유기농 목초지에서 소와 양을 자유 방목하는 자연 친화적인 목장으로, 양이나 타조 먹이 주기, 테마별 산책로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겨울에 삼양라운드힐을 방문하면 대표 프로그램인 양몰이 공연이나 초원 위를 노니는 가축은 보지 못하겠지만, 대신 흰 눈으로 뒤덮인 목장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정상부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까지 합세해 설경에 방점을 찍는다. 목장 구경을 마친 후에는 마트에서 삼양라면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면 완벽하다.

1974년 조성되어 2014년부터 일반에 개방된 하늘목장은 블랙핑크 ‘러브식 걸(Lovesick Girls)’, 투모로우바이투게더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 NCT U ‘프롬 홈(From Home)’, 스트레이 키즈 ‘더 뷰(The View)’ 등 유명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하다. 그만큼 풍경은 보장된다는 뜻. 트레이드 마크인 트랙터 마차를 타고 편하게 목장을 돌아볼 수 있다.

대관령양떼목장은 삼양라운드힐과 하늘목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는 목가적인 풍경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나무 움막이 확실한 포인트를 살린다. 겨울철 대관령양떼목장에서 꼭 해야 할 세 가지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움막 앞에서 인생 사진 남기기, 체험장에서 ‘귀요미’ 양들에게 먹이 주기 그리고 매점 내 대형 화목난로 옆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기!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기 좋은 평창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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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평창 최고의 핫플을 꼽으라면 단연 실버벨교회다. 언덕 위에 세워진 독특한 형태의 석조 건축물로 종교를 떠나 누구나 방문하는 평창의 인기 명소다. 내부도 상시 개방되어 자유롭게 들어가 볼 수 있다. 작은 장작 난로가 공간에 온기를 더하며 아치형 창문 밖으로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언덕 아래쪽에는 양과 포니, 알파카 등이 사는 작은 동물 농장과 화덕 피자 맛집인 나폴리피자가 있어 소소한 즐거움을 더한다.

겨울철에 더욱 반짝거리는 스키장은 크리스마스 기분 내기에 최적의 장소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이자 겨울 스포츠 메카인 평창에는 모나용평, 알펜시아, 휘닉스파크 등 유명 스키장이 여럿 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무장한 이들 스키장은 화려한 야간 조명과 크리스마스트리, 각종 축제와 이벤트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게다가 날씨에 상관없이 100%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보장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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