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가구로 꾸민 새 사무실 인테리어… ‘슴슴한 디자인·실용적 쓸모’ 나무랄 데 없네, 나만의 10평

정우성
합리·실용으로 요약할 수 있는 스웨덴의 가구 및 생활소품 브랜드 이케아의 제품으로 꾸민 필자의 사무실.

합리·실용으로 요약할 수 있는 스웨덴의 가구 및 생활소품 브랜드 이케아의 제품으로 꾸민 필자의 사무실.

불황 등 고려…‘지출 최소화’에 집중
AI 추천받아 가상 배치해보고 구매
넉넉한 수납으로 ‘채우는 맛’ 쏠쏠
북유럽스타일 깔끔한 공간 연출 으뜸
직접 조립 ‘손품’ 팔지만 만족감 높아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 2년 정도 머물렀던 공유오피스를 나가며 새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보증금을 내고 계약을 마쳤는데 인테리어 공사도 해야 했다. 흉한 것들을 걷어내고 깔끔하게 흰색으로 마무리하자 가구의 시간이었다. 이후 약 2개월간 다양한 이케아와 만났다. 몇 가지 기준과 당혹, 마침내 행복과 만났던 이케아 쇼핑 이야기.

경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콘텐츠 시장도 얼어붙는 중이니 큰돈을 지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업계의 소문이 이미 흉흉했다. 그러니 첫째도 둘째도 합리적일 것. 그렇다고 품질이 엉망이어선 곤란했다. 예쁘고 튼튼하고 믿을 만한 회사의 것이어야 했다. 버릴 때 아까워서도 안 됐다. 아쉬움 없이 버릴 수도 있어야 했다. 사업도 미래도 취향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일이 잘 풀려서 더 큰 사무실로 가게 되면 좀 다른 느낌의 가구가 필요할 일이었다. 살림을 줄이거나 사무실을 없앨 형편에 처할 때는 가구도 처분해야 했다. 제아무리 당근마켓에서라도 가구를 중고로 거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집의 대상이 되는 클래식 가구들은 기꺼이 거래하지만 ‘소모품’으로서의 가구 거래는 쉽지 않다. 잘못 들인 가구는 자칫 짐이 되기 십상이라서.

그래서 지난 8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사무실 인테리어를 요모조모 만져보는 동안 이케아에 146만2200원을 썼다. 첫 구매는 59만8600원. 책장과 선반, 두 종류의 카트와 큼직한 러그를 샀다. 두 번째 구매는 38만1800원. 암체어와 화이트보드, 원목 옷걸이와 슬리퍼를 주문했다. 세 번째가 마지막 쇼핑이었다. 회전암체어와 두 개의 노트북 테이블, 화이트보드 펜과 홀더를 사는 데 48만1800원을 썼다. 모두 배송비를 포함한 가격. 세 번의 구매와 조립과 설치를 경험하는 동안 당혹과 기쁨이 엇갈리는 순간들이 여럿 있었다.

첫 번째 당혹의 주인공은 1979년부터 이어온 책장의 대명사 빌리(BILLY)였다. 빌리는 책장의 이데아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컬러도 다양했다. 세계적으로 5초에 하나씩 판매되고 있다는 대중성도 좋았다. 많이 팔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고 책장은 침묵을 알아야 하는 가구니까. 책장을 돋보이게 하는 건 어디까지나 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이케아 가구로 꾸민 새 사무실 인테리어… ‘슴슴한 디자인·실용적 쓸모’ 나무랄 데 없네, 나만의 10평

빌리를 주문하기 전에는 이케아가 올해 2월에 출시한 서비스, 이케아 크레아티브(Kreative)를 써서 공간을 가늠했다. 줄자를 들고 아무리 세세하게 측정해도 실제와 다른 것이 공간과 가구 쇼핑의 현실. 크레아티브는 휴대전화로 공간을 스캔한 후 생성된 가상의 공간에 내가 선택한 가구들을 시험 삼아 배치해 볼 수 있는 기능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공간을 한 번 훑은 후 원하는 가구들을 손가락으로 배치하면 거의 실제 사이즈와 공간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케아가 공들여 만든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덕에 꼭 필요한 가구들을 산뜻하게 고를 수 있었지만…. 실수는 역시 AI가 아니라 인간의 몫이었다. 이 유서 깊은 책장은 벽에 고정하는 게 기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다.

“경고! 가구가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품에 포함된 벽고정 장치로 유닛을 벽에 안전하게 고정하세요.”

웹사이트의 ‘제품설명’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걸 조립을 시작하고 약 1시간 후에 알게 되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혼자 2m에 가까운 책장을 두 개나 조립해 세웠는데 뭔가 허전한 것이었다. 설계의 의도대로 벽에 붙일 거라면 문제가 없었다. 전동 드릴로 벽에 구멍을 내서 단단히 고정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번 사무실에서의 빌리는 공간의 구별을 위한 일종의 가벽이기도 했다. 그래서 읽을 계획이 없고 무게가 나가는 책들을 집중적으로 골라 가장 아래 칸에 벽돌처럼 쌓아두었다. 무게가 더해지니 든든해지기 시작했다. 웬만해선 쓰러질 것 같지 않았다. 누가 일부러 발로 차거나 어깨로 밀치지만 않으면.

두 번째 당혹은 이동식 메모판 겸 화이트보드 엘로벤(ELLOVEN)이었다. 바퀴 달린 다리가 넷이었는데, 무슨 수를 써도 한쪽이 짧아서 덜그럭거렸다. 설마 다리 길이가 다른 걸까. 혹시나 해서 줄자로 측정해 봤지만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불규칙한 바닥의 굴곡이었다. 결국 한쪽 바퀴를 살살 돌려 길게 푸는 식으로 길이를 맞췄다. 엘로벤의 바퀴에는 그를 위한 여유가 이미 준비돼 있었다. 이제 사무실 어디에 두어도 듬직하게 버티고 서 있다.

세 번째 당혹도 비슷했다. 선반 유닛인 요낙셀(JONAXEL), 이동식 카트인 트로텐(TROTTEN)과 로스훌트(RASHULT)도 어쩐지 완성 후에도 흔들흔들했다. 조립을 잘못한 건지, 다음부터는 조립서비스도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설치 후에는 마음을 놓고 말았다. 일부러 흔들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이케아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부러 흔드는데 흔들리지 않는 가구도 없을 테니까.

게다가 로스훌트는 2만5900원, 트로텐은 7만9900원, 요낙셀은 6만원이었다. 이렇게 저렴한데 모두 같은 톤의 하얀색인 데다 쓰임새도 탁월했다. 로스훌트 위에는 각종 문구류와 사무용품을 종류별로 올려두었다. 트로텐 위에는 반자동 커피머신과 전기포트, 커피와 위스키, 과자와 사발면들을 이치에 맞게 보관해 두었다. 일종의 이동식 탕비실로 활용한 것이었다. 요낙셀에는 향수와 촬영 장비와 각종 도구들을 성격에 맞게 분류해 올려두었다. 10평 남짓의 공간이 점점 다채로워졌다. 덕분에 충분한 시작이었다.

이케아가 ‘플랫팩’이라고 부르는, 박스에 담겨 있는 부품들을 직접 조립하는 것은 1953년부터 도입한 방식이었다.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가 첫 전시장을 연 것도 1953년이었다. 가구를 직접 보는 수준을 넘어 배도 채우고 쉬어갈 수 있도록 식사와 차를 제공하는 개념도 그때부터 이어져온 것이었다. 덕분에 2024년의 이케아 매장에서도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쉬어갈 수 있다.

이케아가 쉬운 가구는 아니다. 저렴하고 합리적이지만 직접 조립해야 하니까. 게다가 디자인 라인이 너무나 다양해서 각자의 형편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가구를 고르려면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조립하고 쓰다 보면 놀랄 만큼 빠르게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몇 번만 해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조립할 수 있다. 자리를 잡고 나면 흔들리지 않고 오래 버틴다. 북유럽 문화 특유의 슴슴한 디자인이라 잘 질리지도 않는다.

세 번의 쇼핑, 13개의 품목에 걸친 사무실 이케아 쇼핑 중 최고는 역시 회전암체어 뒤블링에였다. 1967년에 ‘스트레스 제로 암체어 밀라(MILA)’라는 이름으로 팔았던 의자를 개선해 새로 출시한 모델이다. 출시 이후 몇 개월 동안 품절사태를 기록할 만큼 인기였지만 요즘은 그래도 재고가 있는 편이니 충분히 권할 만하다. 24만9000원이라는 가격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예쁘고 편하고 튼튼하다. 맘에 쏙 들어서 하나 더 사서 거실에 두었다. 지금 이 원고도 뒤블링에에 앉아서 쓰고 있다.

첫 이케아는 약 13년 전, 어느 원룸에서의 첫 독립 당시였다. 그때 산 빨간색 서랍장을 아직도 쓴다. 내용물은 버려지거나 새로 채워졌지만 작은 바퀴도, 얇은 철판도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 직접 조립했으니 어디가 어긋나거나 약해져도 뚝딱 고칠 수 있다. 13년간 두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버려지지 않은 짜임새와 쓰임새. 이번에 만난 이케아들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역사를 클래식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가구 브랜드. 합리와 실용을 바탕으로, 어쩌면 그거야말로 이케아의 저력 같았다.

■정우성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이케아 가구로 꾸민 새 사무실 인테리어… ‘슴슴한 디자인·실용적 쓸모’ 나무랄 데 없네, 나만의 10평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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