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사전동의 명문화·선포 요건 엄격 제한 등 법적 통제 강화 필요
잘못된 계엄 동조한 사람들 엄중 처벌하는 것도 재발 막는 한 방법
[주간경향]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서, 학문적으로 평가할 대상도 아니에요. 한마디로 미친X이에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헌법 제77조가 정하고 있는 계엄의 요건이다. 전쟁이 일어났거나 무력 충돌 등이 벌어져 일반적인 공권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 기능이 마비됐을 때 선포하는 것이 ‘계엄’이다. 지난 12월 3일 느닷없는 계엄이 이런 헌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 헌법학자는 기자에게 이번 계엄의 비상식성을 강조하기 위해 ‘미친X’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쓰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국회가 계엄 선포 뒤 155분 만에 해제 결의안을 가결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질문은 남는다. 현행 계엄 제도에 따르면 ‘계엄 선포’는 오롯이 대통령 판단에 맡겨져 있다. 만약 비이성적 판단으로 계엄을 휘두르려는 지도자가 또 나타난다면? 무력 진압 등이 성공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이번과 같은 계엄 사태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정치권과 학계의 제안은 크게 두 갈래다. ‘막무가내 계엄’에 대한 법적 통제 장치를 강화하는 것, 그리고 잘못된 계엄에 동조한 이들을 확실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계엄, 국회 사전 동의 필요할까
계엄법 개정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지난 8월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가능성을 지적해왔던 김민석 민주당 의원 등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여러 건 발의해왔다(발의시점 9~11월). “계엄 선포 이전에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고 선포 후에도 72시간 내 국회 인준을 받아야 한다”,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한 기관은 계엄 논의를 위한 회의 소집 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내 맘대로 계엄’이 현실화하자 민주당은 계엄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월 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계엄법을 따져보니까 너무나 허술하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계엄을 발의하기가 너무 쉽다”면서 “이번 기회에 (계엄법을) 꼭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계엄 선포 시 국회의 사전 동의를 명문화하는 방안에 대해 일부 학자들도 필요성을 공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 사전 동의 제도가) 계엄 남용을 막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군인의 해외 파병 시 국회 동의를 받게 돼 있는 것처럼 계엄에 대해서도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다면 남용 가능성은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에 대한 사후 승인(국회의 해제요구권) 제도가 잘 작동한 만큼 사전 승인 제도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쟁이 터지는 등 분초를 다퉈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진짜로 일어난다면, 그때는 국회 소집을 기다릴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며 “사전 동의가 없더라도 충분히 빠른 시간 안에 (잘못된 계엄에 대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사전 동의 조항을 만들었다가는 (계엄이 진짜 필요한 순간에)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는 대통령이 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사후 승인’ 제도는 무력화된다. 계엄에 대한 국회의 사후 승인 제도를 유지하되, 승인을 받지 못하면 효력을 잃게 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현재 내우, 외환, 천재, 지변 등의 위기 때 발동할 수 있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은 계엄과 달리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한 때에는 효력을 상실한다”(헌법 제76조 제4항)라고 명문화돼 있다.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계엄에 관한 연구’(고문현·고문철, 숭실대 법학연구소, 2020년 5월) 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을 해제할 것을 요구해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고 계엄을 속행한다면 비록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사유가 된다고 해도 국회로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회의 해제요구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제장치는 되지 못할 것이다.” 고 교수는 이 논문에서 “(계엄 역시 긴급명령권과 마찬가지로)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의 효력 상실 등을 헌법과 계엄법에 규정함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계엄의 선포 요건을 ‘무장 반란’ 등 무력이 수반된 소요의 경우로 좁혀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계엄 요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가운데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는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감사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탄핵소추 발의와 예산 삭감까지도 ‘국가비상사태’라고 주장했다.
송윤선 국민대 정치대학원 겸임교수는 ‘시대 변화에 따른 전시계엄 제도 개선 방안’(‘국방정책 연구’, 2016년 봄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계엄 선포 요건의 모호함 때문에) 비무장 시위나 소요로 인해 사회질서가 와해한 경우에도 계엄 선포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비무장 상태의 국민을 대상으로 군이 치안질서를 담당하는 것으로, 인권 탄압이나 군의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의 비난과 계엄법 남용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국가비상사태에 관한 판단이 각자마다 다를 수 있고, 집권자의 정치적 의도에 맞춰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어 계엄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송 교수는 이 논문에서 무력이 수반되지 않은 소요의 경우에는 군의 투입을 제한한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사례를 들며 “국가비상사태의 기준을 ‘무장 소요’나 ‘무장 반란’ 등으로 엄격히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벌만이 재발 막는다”
‘막무가내 계엄’의 재발을 확실하게 막기 위해 ‘법 개정’보다 ‘엄중 처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강승식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법을 너무 엄격하게 해놓으면 정작 필요할 때 활용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이번 비상계엄은) 요건(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을 충족하지 않는 계엄인 데다,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군까지 투입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내란죄의 정의)하려 한 것으로 대통령을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윤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헌법과 계엄법을 종합하면, 설사 정상적인 계엄이라 할지라도 국회에 대해서는 조치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국회가 계엄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무장군인들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시설을 파괴했는데 이는 무장병력을 통해 헌법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내란죄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계엄을 요청한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으로 나섰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병력을 국회에 투입한 육군특수전사령관과 수도방위사령관 등은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이 선포됐을 때 합참의장 등이 ‘우리는 불법 부당한 명령에 따를 수 없다. 전군은 정위치 하라’와 같은 성명을 내주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처단을 운운하는 포고령이 나왔다”면서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것에 대해 내란죄를 적용하고 엄벌해야 군이 다시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등은 이등병으로 강등시켜 감옥 보내야 한다는 주장을 접했는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역시 ‘엄벌론’을 강조했다.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법이 없어서 정권을 찬탈했느냐. 법 허점을 따지는 것은 한가한 얘기”라면서 “내란수괴는 현행범 체포대상이다. 대통령과 전 국방부 장관, 국무회의에 참여한 국무위원 전원,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지휘한 작전에 들어간 군 간부들 모두 찾아내 체포하고 내란죄를 강력히 물어야 한다”고 했다.
임 소장은 특히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작성됐던 ‘계엄령 검토 문건’ 사건이 흐지부지된 것을 언급했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2017년 2월 기무사에 비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계엄을 계획하는 문건을 작성케 했다. 이 문건에는 군 병력을 동원한 계엄군 구성, 입법·사법·행정 기관 장악, 언론 검열 등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지난 2월 검찰은 조 전 사령관에 대해 “위헌적 문건을 작성케 했다”면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만 적용했을 뿐 내란 예비·음모, 반란수괴 예비·음모, 반란 지휘 예비·음모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했다.
임 소장은 “군인권센터가 2017년 계엄령 문건을 공개하면서 ‘군은 언제라도 그런 짓(쿠데타)을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 또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군은 이제껏 군부독재 시절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반성한 적이 없다. 군에 대한 강력한 문민통제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쿠데타 시도를 강력히 처벌하는 한편, 군을 어떻게 민주화하고 통제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