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사태’ 금융권 비상
지난주 사흘간 증시 금융업종 외국인 순매도 7000억원 넘어서
원화자산 투자 회피 심리 환율 급등 우려…위기 관리 대책 모색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업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외국인 자금이 탄핵정국 장기화로 지속적으로 이탈할 경우 외화 유동성 부족 등 파장이 일순간 급격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비상대응체계를 유지하며 시장 변동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6일 사흘간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 종목의 외국인 순매도는 4809억원에 달했다. 금융업종 전체로 확대하면 순매도 규모는 7000억원이 넘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주 상승을 견인한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대한 기대가 훼손되면서 외국인들이 투자를 대거 철회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업종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지난 3일 37.19%에서 6일 36.12%로 1%포인트 넘게 빠져, 전체 21개 업종 중 하락 폭이 가장 컸다.
문제는 앞으로다. 향후 금융회사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이들의 보유 자산에서도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무산으로 확대된 불확실성이 환율 변동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박형중 우리은행 애널리스트는 “한국 원화자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회피심리가 높아져 직전 고점 환율(2022년)인 달러당 1430~1440원을 상향 돌파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분석했다.
금융권엔 비상이 걸렸다. 환율 급등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유동성 모두에 악역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단 외화부채 평가 규모가 커져 은행의 대표적인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할 수 있다. 이 경우 은행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해외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생긴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 약 0.01~0.02%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달러 이탈이 가속화되면 당장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평균 157.3%로 규제수준을 상회했지만, 위기가 언제 닥칠지는 알 수 없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현재는 외화 LCR, BIS 자기자본비율 모두 양호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원화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에 불이 붙으면 유동성 위기가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5대 금융지주는 3일 이후 비상대응체계를 유지하며 환율 등 금융시장 변동성 전반을 점검하고 유동성 현황을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도 주요 금융지주 회장 등이 참석하는 금융시장 점검회의 개최를 검토 중이다.
이처럼 금융권이 위기관리 수준을 높이면 신규 대출자, 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절벽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은행이 유동성·건전성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전자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저신용자 등에 대한 대출을 막거나 금리를 높일 수 있다”면서 “취약층에 대한 별도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