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들어 보고 싶은‘우주 소리’의 비밀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장

음향과 음파 등을 아우르는 개념인 소리는 ‘매질(파동 전달의 매개물)’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발생하고 전파된다. 공기 중은 물론 물속과 고체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입자가 거의 없는 우주공간에서는 소리의 전달이 매우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성간물질이나 태양풍이 모인 우주 공간에서는 입자가 많기 때문에 소리가 생성·전달된다.

이 때문에 우주론에서도 소리는 중요한 학문적 탐구 영역이다. 예를 들면 ‘중입자(바리온) 음향진동’이라는 현상은 초기 우주의 원시 플라스마(물질의 제4상태)에서 나타나는 ‘음향 밀도파’의 파동 현상을 가리키는데,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가속 팽창을 일으킨다고 추정되는 ‘암흑에너지’를 설명할 근거를 얻는다. 소리가 우주의 초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중입자 음향진동의 파장은 특이하다. 한 파장이 무려 45만 광년이나 되는 초월적 길이를 보인다. 피아노의 가장 낮은 음인 27.5㎐(헤르츠)보다 47옥타브나 더 낮은 소리다. 당연히 우리가 들을 수 없을 만큼 매우 낮은 소리 진동이다.

이러한 극단적으로 낮은 소리 진동은 유럽우주국(ESA)이 2009~2013년 운영했던 ‘플랑크 우주망원경’을 통해 포착할 수 있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측정해 초기 우주의 중입자 음향진동을 찾아낸 것이다.

소리 분야와 관련한 또 다른 연구 방향도 주목된다. 과학자들은 특정 장소에서 소리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을 ‘음향 블랙홀(ABH)’이라고 부르며 연구 중이다.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인해 빛조차 외부로 나가지 못하는 천체인데, 이를 소리에 대입한 표현이다.

1981년 윌리엄 운루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극저온에서 블랙홀 내부의 ‘유체 흐름(포논)’이 음향 호킹 복사를 일으켜 포논 쌍을 관측할 수 있다는 음향 블랙홀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전원주 카이스트(KAIST) 교수가 뾰족한 끝단의 모양을 가지는 막대가 있을 때 소리 진동에너지가 막대 끝단으로 모이면서 반사 없이 모두 소멸하는 음향 블랙홀 연구를 발표했다.

우리 태양도 소리의 관점으로 다룰 수 있다. 태양은 열적인 내부 과정으로 인해 진동하며, 이러한 진동은 태양 표면과 대기에 영향을 주어 태양 플라스마를 통해 이동하는 파동을 생성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진동을 오디오 변환 과정을 통해 소리 진동 모드로 바꿨다. 이를 통해 태양 역학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태양 활동을 예측하는 데 활용하게 됐다.

우주는 물질 세계로 이뤄져 있으며, 물질이 있는 곳에 매질 진동이 있고, 매질 진동의 전달은 소리로 나타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진동하고 전파하는 소리 파동의 바다에 떠 있는 존재다. 파동은 우리에게 때로는 빛의 형식으로, 때로는 소리의 형식으로 다가온다. 파동을 이해할 때 우리는 우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장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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