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시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 필요한 것을 물물교환하는, 굳이 잇속을 챙기기 위해 아웅다웅할 일이 없는 장터였다. 그런데 이 시장을 눈여겨본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순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시장이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곳임을 직감했다. 그는 먼저 시장 근처의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장을 내려다보며 목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찾은 뒤 그곳에 자리를 깔았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만한 것을 사 모은 후 독점적으로 비싸게 되팔았다. 서로 물건을 교환할 뿐 아무도 돈벌이를 하지 않던 곳에서 장사꾼은 그동안의 질서를 교란하며 독점을 통해 혼자 큰 이익을 챙겼다. 이런 행태에 사람들은 장사꾼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이 이야기는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에 나오는 것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국정농단’의 ‘농단’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밭두둑’이나 ‘언덕’을 뜻하는 농(壟)과 ‘끊다’를 의미하는 단(斷)으로 이루어진 농단은 한자 그대로는 “깎아 세운 듯이 높은 언덕”을 뜻하지만, 못된 장사꾼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농단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권한을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상황을 비판할 때 쓰인다.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못된 짓을 일삼다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많은 나라의 대통령 같은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 가까이에서 혹은 아래에서 잇속 챙기기에 눈이 벌건 ‘조무래기’들의 행위에는 농단보다는 ‘농락’을 쓰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한자로 “새장과 고삐”를 뜻하는 농락(籠絡)이 “남을 교묘한 꾀로 휘어잡아서 제 마음대로 놀리거나 이용함”을 이르기 때문이다. 남을 속이거나 남의 일을 그르치게 하려는 간사한 꾀, 즉 사기를 쳤다는 점에서 농간(弄奸)을 쓸 수도 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주변에서 농락과 농간을 일삼던 모씨가 “내가 구속되면 현 정부는 한 달 만에 무너진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점점 현실이 돼 가는 듯해 묘한 기분이 든다. 그가 마치 용한 점쟁이 같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