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국회는 ‘민생’을 저버리지 말라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계엄이라는 블랙홀에 온 정국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연일 새로 밝혀지는 구체적인 12월3일 밤의 상황을 보면, 천만다행으로 유혈사태는 없었으나, 도저히 2024년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시도되고 실행되었다. 어찌 이러한 참담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배경을 샅샅이 밝히는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만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왜 이런 일을 하필 12월 초에 벌였는가 따져 묻고 싶다. 물론 1년 중 그 어느 때라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반헌법적인 일임은 분명하나, 특히 12월이 서민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시절인지 대통령은 정녕 몰랐을까.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더 춥고 힘들어지는 시기이자, 국회와 정부가 올해 묵은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앞두고 많은 일을 처리하는 달이다. 그럼에도 난데없는 비상계엄으로 정부와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져버렸다.

일단, 새해 예산이 문제다. 대한민국의 예산안은 12월 한 달 동안 국회가 본격 심의하여 연말까지 의결을 마치는 구조로 확정된다.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로서, 이 예산안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나랏돈의 흐름은 서민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지난달 말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원안에서 4조원 이상 감액된 예산안을 단독으로 표결 처리했다. 특히 예비비가 2조4000억원이나 감액되면서 재해나 재난 등 급박한 상황에 대처할 예산이 사라졌다. 주요 사정기관의 특수활동비가 전액 삭감된 것에 대하여 신종 민생침해범죄 수사에 큰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줄을 이었다.

한편 이 와중에도 내년 국회의원 세비를 인상하고 보좌진 숫자도 늘렸다. 국회 특수활동비는 이름만 살짝 바꾼 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불균형과 비합리를 수습하기 위한 추가적 예산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전혀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쌓여있는 민생 입법이 언제 처리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는 미뤄둔 숙제를 하는 것처럼 매년 말 법률을 대거 처리해왔다. 예산이나 세법 관련 법안 외에도 사회안전망과 사회복지에 관한 법안, 노동이나 산업, 경제 구조에 관한 법안 등 다양한 분야의 법안이 연말에 처리된다. 지금도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까지 거쳐 본회의 상정을 눈앞에 둔 민생 관련 법들이 올해 안 처리를 바라며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전력망특별법, 고준위특별법, 위기청년지원법, 단통법폐지법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12월엔 현 경제 상황이나 내년 경기 예상을 고려하여 새해 경기부양에 관한 법안이 처리되기도 하고, 가을 국회에서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각종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 논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계엄 사태로 탄핵 정국으로 급변하면서 국회의 입법 활동은 멈춰있고, 언제 재개될지 예측조차 어렵다.

입법 활동이 재개된다 해도 이 혼란한 상황을 기회 삼아 통과되지 말아야 할 법을 통과시키는 불상사는 막아야 한다. 현재 시민사회와 국민적 공분이 계엄 사태에 쏠려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국회 입법 활동을 감시할 여력이 부족하다.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은 정당법 위반 범죄의 공소시효를 6개월로 단축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부칙을 통해 법안 시행 이전 발생한 범죄에도 이를 적용하도록 하였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삭제하고 당선무효 및 피선거권 박탈 기준도 벌금 100만원에서 벌금 1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이 엄중한 시국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어물쩍 악법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이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은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생일을 맞고, 사업을 열고, 출근한다. 한 해를 정리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새해를 준비하며 삶을 재정비하는 연말을 위하여 국회는 나라 살림과 민생을 살피고 또 살피라.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br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Today`s HOT
2025 도쿄 오토 살롱 말레이시아-일본의 상호 보완 관계 회담 캘리포니아 산불 희생자 특별 미사.. 2025 앨비스 페스티벌
이집트의 귀중한 유적지, 복원 작업을 하다. 구 격전지의 시리아 지역.. 활기를 되찾는 사람들
티베트의 지진으로 촛불 집회에 나선 사람들.. 레바논의 새 대통령, 조셉 아운의 취임식
규모 6.8의 대지진이 일어난 중국에서의 구호 활동 필리핀에서 열린 검은 나사렛의 종교 행렬 대만 해군의 군사 훈련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프랑스를 방문하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