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7일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윤석열 부부에게 두 번째 면죄부
질서 있는 퇴진 말 모두가 공허
당정 협의로 통치, 법적 근거 없어
2024년 12월3일은 경악의 밤이었다. 공포의 밤이었고, 울분의 밤이었다. 아침이 오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누구에게 건넬 수 있을까, 근심에 찬 밤이었다. 윤석열이 너무도 뜬금없이,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국회에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들어와 난입했다. 이들은 707특수임무단, 제1공수여단, 수방사 특임대로, 국가를 위협하는 적에 맞서는 우리나라 최정예 부대였다. 이들이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고, 국회의장·야당 대표·여당 대표를 비롯해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한편에선 전쟁 시에 점령지에서나 선포되는 포고령이 발동되었다. 모든 정치 활동을 금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고, 의료인은 본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할 것이며, 자신들의 명령을 따라야 선량한 시민이며 이외엔 모두 체제전복세력으로 처단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민주국가에선 아무리 계엄이 선포되어도 유일하게 그 무엇도 손댈 수 없는 곳이 있다. 입법권이 작동하는 의회다. 흔히 의회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의회가 주권의 힘이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권의 본질은 ‘법을 제정하는 힘’이다. 법은 규율하는 힘이지만 더 주요하게는 삶을 자유롭게, 평화롭게, 협력하게 만드는 창조의 힘이다. 법이 무너진 곳에서 삶은 소위 ‘자연상태’가 되고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근대적 주권론에서 법을 제정하는 힘이야말로 주권이라 여겨져 왔다.
더하여 주권은 국가의 예외상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은 이 힘을 입법자들에게 주었다. 어떤 예외상태도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즉시’ 종료된다. 주권의 명령이기에 대통령에겐 거부권이 아예 없다. 이런 이유로 계엄 시에도 입법권만큼은 손댈 수 없다. 계엄군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행정 및 사법 기능’이라고 계엄법 제2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렇기에 계엄군의 의회 난입은 ‘주권 찬탈 시도’였다. 민주국가인 이 나라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독재국가로 돌려놓으려는 시도였다. 윤석열의 계엄령이 명백히 ‘쿠데타’이고 ‘내란’인 이유다.
이런 주권 찬탈 시도를 막아낸 이는 시민들이었다. 더하여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아는 용기 있는 의원 190명이었다.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부리에 맞섰고, 의원들은 의회의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향했고, 국회의장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절차를 준수해 내란 시도를 무력화했다. 역사적 승리였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12월7일 저녁,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민의힘’이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부부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두 번째 쿠데타를 감행했다.
계엄령의 밤, 내란을 막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다른 동료 의원들이 국회로 위험을 감수하며 향했을 때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90명은 없었다. 바로 이 집단이, 윤석열의 2분짜리 사과를 내밀며 내란을 처벌하기 위한 첫걸음인 ‘탄핵’ 표결에 참여하지 않아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국민의힘이 내민 탄핵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는 말, 대통령을 직무에서 사실상 배제하겠다는 말, 총리와 당이 질서 있는 퇴진을 주도하겠다는 말 모두가 공허하다.
그 공허함은 단순한 예로도 드러난다. 국민의힘은 탄핵 표결과 함께 김건희 특검법도 무산시켜 버렸다. 만약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또다시 상정하고 통과시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외엔 막을 방법이 없다. 더하여 국가적으로 군사적 위기가 발생하면 군통수는 누가 할 것인가?
총리와 당이 질서 있는 퇴진을 주도하겠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이 법적으로 모든 권한을 유지한 상태에서 총리와 당이 그 권한을 나눠 당정 협의를 통해 통치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무엇보다 그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법령으로 만들어서 한다 해도 민주당이 받아주지 않으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12월7일, 국민의힘이 벌인 일은 법적으로 국민을 윤석열이 만들어낸 위기 상황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었기에 두 번째 쿠데타로 불러야만 한다.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에는, ‘농장 전체를 위해’라는 구실로 농장을 뒤엎고 사과와 우유를 독점하려는 돼지들이 등장한다. ‘혼란을 막기 위해’라는 국민의힘의 핑계가 이와 크게 달리 들리지 않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