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야 시인


[詩想과 세상]늑대들

늑대들이 왔다

피냄새를 맡고
눈 위에 꽂힌 얼음칼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얼음을 핥을수록 진동하는 피비린내
눈 위에 흩어지는 핏방울들

늑대의 혀는 맹렬하게 칼날을 핥는다
제 피인 줄도 모르고
감각을 잃은 혀는 더 맹목적으로 칼날을 핥는다
치명적인 죽음에 이를 때까지

먹는 것은 먹히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저녁이 왔고
피에 굶주린 늑대들은 제 피를 바쳐 허기를 채웠다

늑대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나희덕(1966~)


늑대들이 오고 있다. 한겨울 혹한에 굶주린 늑대들이 “피냄새를 맡”으며 오고 있다. 눈 위에 꽂힌 “얼음칼” 쪽으로 모여들고 있다. “얼음칼”은 에스키모들이 늑대를 사냥할 때 쓰는 도구, 동물의 피를 칼에 묻혀 얼린 후에 눈 속에 파묻는다. 칼날에 얼어붙은 피를 다 핥고 나면 감각이 마비된 늑대는 자신의 피라는 것도 모르고, 더욱 “맹렬하게 칼날을 핥”는다. 너덜너덜해진 혀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눈벌판을 물들이며 죽어간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에 결국은 파멸로 치닫는다. 죽어서야 멈춘다.

검고 검은 그림자들이 우리의 일상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왔다. 유리창은 깨졌고, 문은 부서졌다. 누군가는 간신히 담을 넘었고, 누군가는 바리케이드를 치며 온몸을 던졌다. 미친 운전자의 폭주를 보며 경악하면서, 긴긴밤을 보냈다. 우리의 겨울은 지금 혹독한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멈추지 않는 그들이 자꾸만 우리를 어둠 쪽으로 몰고 간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언 발자국들을 포개며 다시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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