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무너져내린 건물, 다시 여기서 살 수 있을까…‘우주 에너지’로 속 들여다본다

이정호 기자
지난달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한 아파트 건물 일부가 러시아 공격에 파괴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한 아파트 건물 일부가 러시아 공격에 파괴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주 방사선에서 생성된 뮤온 입자
콘크리트 20m 두께도 파고들어
에스토니아 개발 ‘투시 장비’ 활용
건물 내 부식된 철근 등 확인 가능

X선과는 달리 DNA 손상도 없어
우크라 교량 안전 평가 사용 예정

# 본래 쭉 뻗은 담장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파트 건물 일부가 붕괴돼 있다. 마치 두부 가운데를 칼로 예리하게 잘라 둘로 나눈 듯한 모양새다. 이 사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격전지인 도네츠크 지역에서 지난달 촬영됐다.

이 사진을 보면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의 다른 부분은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때가 끼고 그을음이 묻어 있지만, 건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 형태는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쟁의 격전지마다 존재하는 이 같은 우크라이나 내 파손 건물에서는 사람이 살아도 될까.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건물의 깊숙한 내부가 구조적인 손상을 입었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 그런 판단을 내릴 방법이 있을까.

있다. 뜻밖에도 열쇠는 우주다. 지구 밖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우주 방사선’을 이용해 건물 내부의 안전도를 알아내는 기술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주목받고 있다.

뮤온 입자로 건물 내부 투시

에스토니아 기업 ‘지스캔’이 개발한 뮤온 감지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실릴 정도의 덩치여서 간편한 이동이 가능하다. 지스캔 제공

에스토니아 기업 ‘지스캔’이 개발한 뮤온 감지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실릴 정도의 덩치여서 간편한 이동이 가능하다. 지스캔 제공

미국 과학기술전문지 스페이스닷컴은 최근 구조물 내부의 손상 정도를 자세하고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특수 투시 장비가 전후 우크라이나 건물의 안전성을 진단할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에스토니아 기업 ‘지스캔’이 가진 이 기술은 지구 밖에서 지표면으로 쏟아지는 에너지의 일종인 우주 방사선을 이용한다.

우주 방사선은 수많은 별에서 생성된다. 양성자 등 물리적으로 높은 에너지를 지닌 물질이 포함돼 있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지구로 쏟아지는 우주 방사선은 대기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때 독특한 일이 일어난다. 대기와 충돌하며 ‘뮤온’이라는 입자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지금 이 시점에도 지구 전체에는 1㎡당 뮤온 입자 1만개가 매초 쏟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뮤온의 폭우가 내리고 있는 셈이다.

뮤온의 성질은 특이하다. 두꺼운 콘크리트를 쉽게 관통한다. 최대 20m 두께를 파고들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밀도가 특별히 높은 특정 물체를 만나면 뮤온은 관통하지 못하고 흡수된다. 지스캔이 만든 장비는 바로 이 같은 뮤온 흡수 상태를 알 수 있는 감지기다. 이 감지기를 우크라이나 전후 남은 건물 여기저기에 갖다 대려는 것이다.

콘크리트 내에서 뮤온을 흡수할 정도의 밀도 높은 물질은 대개 부식된 철근이다. 건물에 금이 가면서 수분이 들어가서 생기는 현상이다. 콘크리트 안에 물이 고여도 밀도가 높아진다. 이런 현상이 다수 발견되는 건물에서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골병’이 든 건물을 추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시민이 들어가서 살아도 될 건물과 철거해야 할 건물을 구분하는 일이 가능하다.

지스캔은 회사 설명자료를 통해 “뮤온 감지기를 사용해 건물 내부 모습을 3차원(3D) 이미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포 공격 안 해 인체 안전

뮤온 감지기는 사과 상자보다 조금 더 큰 직육면체다. 가로 1m, 세로 1.7m, 높이는 0.4m다. 무게는 80㎏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비교적 간편하게 싣고 다닐 수 있는 덩치다. 전기로 작동한다.

뮤온 감지기를 쓰지 않으면 현재 사용 가능한 기술은 X선 감지기다. 그런데 X선 감지기는 투과할 수 있는 깊이가 10~20㎝에 불과하다. 뮤온 감지기로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이(20m)보다 훨씬 얕다. X선 감지기로는 건물의 구조적인 이상을 정밀하게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뚜렷한 장점이 있지만 뮤온 감지기는 X선을 이용한 안전 진단 방법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들어가는 것이 문제다. X선 감지기 가격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인데, 뮤온 감지기는 약 10배 비싸다. 검사 시간도 X선 감지기는 수분이면 되지만, 뮤온 감지기는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최대 수주일이 걸린다. 이 때문에 뮤온 감지기는 화산 속 마그마 감시나 원자력발전소 점검, 피라미드 내부 투시 등 거대한 덩치를 지닌 대상을 들여다보는 데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이 큰 대형 콘크리트 건물 내부의 결함을 명확히 알기 위해 뮤온 감지기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지스캔은 “뮤온은 X선과는 달리 환경적으로도 안전하다”며 “생물의 세포나 DNA를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작업자의 신체에도 위험을 만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스캔은 뮤온 감지기를 조만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길이 1500m짜리 대형 교량의 안전도를 평가하는 데 우선 사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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