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권 ‘피해자들’의 울분이 뭉쳤다…“누가 시민의 편인가”

김송이·전지현 기자

다시 거리에 선 사람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순직 해병대원, 입을 틀어막힌 학생, 전세사기 피해자들까지. 제각각 정부를 규탄하며 거리에 나섰던 이들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한데 모였다. 이들의 옆에는 100만 시민(주최 측 추산)이 있었다. 8일 만난 이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야말로 다르고도 같은 피해를 총집합한 사태라고 했다. 이들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윤 대통령을 끌어내릴 때까지 지치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국민을 외면하는
대통령과 여당
초지일관 한결같아
참담합니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어쩜 이렇게 초지일관 한결같을까요. 정말 참담합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여의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거부하며 본회의장을 일제히 떠나는 모습을 보며 지난 1월9일이 떠올랐다고 했다. 당시에도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 반대하며 표결 직전 본회의장을 단체 퇴장했다. “국민이 부여한 역할을 다하라”고 외치던 유가족의 울분은 지난 7일 여의도 집회 현장에서 되풀이됐다. 이씨를 비롯한 시민 100만명은 당론을 이유로 투표 의무를 포기한 여당 의원들에게 “공범들”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이씨는 2022년 10월 이태원에서 국민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후 사과 한마디 없던 정부·여당과 줄곧 싸워왔다. 2년2개월이란 시간이 무색하게도,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태원 참사 때도, 채 상병 사건 때도 윤석열 정부는 잘못을 부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다”며 “앞서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계엄 같은 일도 벌인 것”이라고 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로 들어서는 모습을 본 그는 “그간 참사나 청년의 죽음을 반복하지 않고자 힘들게 싸워온 시간이 모두 부질없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좌절도 했지만 추운 겨울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을 보며 계속 싸울 힘을 얻었다고도 했다. 이씨는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보며 이태원 유가족들이 정부·여당에 느낀 울분에 공감한 것 같다”며 “앞으로는 (정부·여당의) 폭거를 막을 방법을 다 함께 고민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입틀막’당했던 대학원 졸업생

지난 2월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입틀막을 당했던 신민기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신민기씨 제공

지난 2월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입틀막을 당했던 신민기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신민기씨 제공

계엄이란 형태로
국민에 ‘입틀막’
표현·신체의 자유
억압은 안 돼

‘입틀막’ 피해자인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씨도 전날 여의도 집회를 찾았다. 신씨는 지난 2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윤 대통령에게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다가 사지가 들려 쫓겨났다. 입틀막 경호를 지시했던 이는 당시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었다. 신씨는 김 전 장관 등이 비상계엄을 주도한 것을 보며 “입틀막하며 권력을 사적 유용했던 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이 되면 당연히 군대를 사적 유용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비상계엄 사태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입틀막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모두가 계엄이라는 형태로 (입틀막을) 간접적으로 겪었다고 본다”며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가 억압당할 수 있음을 느꼈기에 국민들이 이만큼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전날 탄핵안 표결이 불성립되는 걸 보며 참담했지만 새로운 기회로 삼길 바란다고 했다.

박정훈 대령 해병대 동기

박정훈 대령 해병대 동기인 김태성씨가 지난 7일 딸과 함께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김태성씨 제공

박정훈 대령 해병대 동기인 김태성씨가 지난 7일 딸과 함께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김태성씨 제공

채 상병 사건처럼
국민 생명을
소홀히 대하는
정권에 실망

해병대 예비역 김태성씨는 열한 살 딸과 함께 촛불집회를 찾았다. 김씨는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과 해병대 사관 동기다. 지난해 11월부터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20여차례 1박2일 행군과 기자회견 등을 해왔다.

그는 그간 해병대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해왔다. 외압의 핵심으로 지목된 윤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억눌러왔다. 혹여나 동기의 명운이 걸린 채 상병 사건이 정쟁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더 이상 절제된 표현만을 강요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김씨는 빨간 해병대 옷을 입지 않은 일반 시민으로서 탄핵 집회를 찾았다. 계엄 이전의 집회와 달리 국회 앞을 빽빽이 채운 사람들에게선 하나 된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김씨는 “야당의 계략이나 언론의 선동 때문이 아니라 ‘불안정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놔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시민들이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채 상병 사건은 정권이 국민 생명을 소홀히 한다는 점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맞닿아 있다. 김씨는 “계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까지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데도 야당을 길들이기 위한 도구로 이를 사용했다”며 “채 해병 순직 때에도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던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전세사기 피해자 무적(활동명)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무적 제공

전세사기 피해자 무적(활동명)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무적 제공

현 정부에선
국민 모두 피해자
버려졌다는
생각에 눈물

전세사기 피해자 무적(활동명)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뉴스를 보고 곧바로 택시를 잡아 여의도 앞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는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한 푼이 귀한 상황이지만 국회의원들을 어떻게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계엄이 해제되고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머물며 또 다른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한달음에 달려온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국회 앞 농성장을 지켰던 무적은 계엄사태를 지켜보며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정부와 여당에 다시 한번 분노했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에선 우리나라 국민 중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며 “우리는 모두 버려졌다고 생각되면서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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