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가 올 연말 발표 예정이던 비급여·실손보험 관리 강화 대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소위 4개 개혁 과제 중 하나인 ‘의료 개혁’에 포함되는 내용인데, 의사 단체들이 비상계엄 포고령에 반발해 논의 참여를 철회하면서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9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는 당초 오는 19일 실손보험 개혁 의견수렴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현재로선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계획된 이 공청회에서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선 방안, 의료사고 안전망을 포함한 의료개혁 2차 실행 방안에 대한 보험업계 및 의사단체 의견을 수렴한 뒤 이달 말 개혁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까지도 공청회 필수 참석자인 보험업계는 일정을 공유받지 못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공청회 등 관련 일정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정이 불투명해진 건 병원단체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대거 빠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한병원협회(병협)와 대한중소병원협회(중소병협), 국립대학병원협회는 지난 3일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등 이탈 의료인 처단’ 내용이 담긴 데 대한 항의 표시로 논의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의료개혁특위는 비급여·실손보험뿐만 아니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등 개혁 과제들을 논의해온 협의체다. 금융위는 실손보험 관리 강화 방안에 대해 주도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예정대로 12월 중 실손보험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실손보험 개편은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제도개선’ 두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이 중 의료계 협조가 필수인 비급여 개혁이 없으면 이달 실손보험 개혁안을 발표한대도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가입자 수가 4000만명에 달하며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은 이미 세 차례 규정을 변경했지만 여전히 손해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21년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 위험손해율은 2021년 61.2%에서 올 상반기 131.4%까지 올랐다. 손해율이 100%를 웃돈다는 건 보험사가 거둔 보험료보다 지급된 보험금이 많다는 의미다. 이는 보험사가 계속 실손보험료를 올리는 배경이 됐다.
이 때문에 보험사와 의료계가 병원의 비급여 과잉진료를 제한해 일부 가입자들의 ‘의료쇼핑’을 막는 게 실손보험 제도 개선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그간 복지부는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비급여 진료를 ‘관리급여’로 넣어 환자 치료비 부담률을 높이는 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관리급여의 횟수 등을 정해 이를 넘어서면 진료 자체를 금지하는 안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보험사 관계자는 “복지부와 금융위가 비급여 관리를 놓고 절충점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올스톱된 것으로 보인다”며 “병원협회와의 논의가 중단되면 실손보험 개혁안은 맹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수 개월간 금융위와 복지부가 논의를 해온 만큼 일정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보험연구원 정성희 실장은 “의사단체 없이 복지부와 금융위가 비급여·실손보험 관리 강화 대책의 세부 방식 논의를 계속 이어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