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제주 4·3사건을 정부에 불리하게 왜곡했다는 보수 진영의 주장을 반박한 MBC 보도에 ‘해당없음’을 의결했다. 다만 방심위원들은 민원을 제기한 보수 언론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며 MBC에 “무장대를 ‘남로당 무장대’라고 표현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심위는 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MBC의 의견진술을 들었다. MBC는 지난 10월14일 <뉴스데스크>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이 ‘역사왜곡’이라는 김규나 작가의 조선일보 칼럼 내용을 반박하는 팩트체크형 기사를 보도했다. 김규나 작가는 10월11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수상 작가(한강 작가)가 써 갈긴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라며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제주 4·3사건이 순수한 시민을 우리나라 경찰이 학살했다는 썰을 풀어낸 것”이라고 썼다. MBC는 공식 자료들을 통해 이 주장을 반박하며 “(제주 4·3사건 때) 순수한 시민이 경찰에 희생당했다는 한강 작가 소설의 배경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했다.
보수 성향 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는 MBC 보도가 문제적이라며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토벌대는 ‘군인·경찰’로 묘사했으면서 무장대에는 ‘남로당’이라는 수식어를 쓰지 않아 군인·경찰에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켰다는 취지다. 류희림 위원장 등 대통령 추천 방심위원 3명은 이 안건을 만장일치로 신속심의 대상에 올렸다.
김정수 위원은 “굳이 무장대라고 애매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나 의견을 듣고 싶어 의견진술을 결정했다”며 “민간인의 억울한 죽음도 밝혀져야 하지만, 양민의 희생을 차치하더라도 국익 위해서 (남로당 표현을) 해주는 게 어땠을까”라고 했다. 류 위원장은 “4·3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땐 군경 토벌대에 비해 무장대는 어떤 무장대인가 의문이 남을 것”이라며 “앞에 ‘군경’을 넣었다면 뒤의 무장대도 ‘남로당 무장대’라고 쓰면 균형이 잡히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의견진술에 나선 한동수 MBC 뉴스룸 취재센터장은 “정부의 진상보고서에 쓰인 용어도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라고 나오지, ‘남로당 무장대’라는 문구는 1개도 나오지 않는다. 4·3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문도 마찬가지”라며 “제작진은 용어를 쓸 때 보고서와 판결문을 참고했다. 가치판단이 아니라 공식 문건과 판결문 문구를 인용한 것”이라고 했다.
한 센터장은 “문민정부 이후 4·3사건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이라는 것”이라며 “민원 내용이야말로 4·3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문제제기”라고 했다.
방심위원들은 의견진술을 들은 뒤 ‘해당없음’ 2명(류 위원장, 강경필 위원), ‘행정지도 권고’ 1명(김 위원)으로 ‘해당없음’을 의결했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방심위지부는 “해당 민원이 신속심의 안건으로 상정된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고, 역사적 사실을 다룬 방송에 공정성 심의를 하는 것 자체도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제주 4·3사건의 무고한 양민 학살과 사회적 기억, 애도 문제를 조명하며 인류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낸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왜곡된 주장을 바로잡는 것은 언론 본연의 책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