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7일 탄핵소추안 폐기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정부 부처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들은 “윤석열 탄핵”을 외치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일상을 반납하고 거리로 나온다.
비상계엄 유탄은 사회적 소수자에게까지 떨어졌다. 비상계엄 사태가 ‘이슈 블랙홀’이 되면서 하루하루 절박하게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가 여론화될 수 있는 공간이 극도로 좁아졌다. 윤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가 지워버린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몸부림을 기록해둔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9일 20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 2022년 6월2일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를 외치며 파업을 벌인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저임금, 다단계 하도급 등 조선소 현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당초 김 지회장은 지난 5~7일 서울에서 오체투지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비상계엄 여파로 일정을 취소했다. 이날 상경 투쟁 일정을 마치고 거제로 내려간 김 지회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탄핵 국면에서 윤석열 탄핵만을 외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이번 국면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드러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은 이날로 337일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부산에서 30만보를 걸어 지난 1일 구미공장에 도착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곧 땅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 말을 하고 싶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지난 8일은 전북 김제시에 있는 특장차 제조업체 ‘HR E&I’ 노동자 강태완씨(32·몽골명 타이왕)가 산재로 숨진 지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강씨는 1997년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다가 올해 취업해 안정적 체류자격을 얻은 청년 노동자였다. 강씨 어머니는 아들 시신이 안치돼 있는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을 찾아 영정 사진 앞에 국화꽃을 올려두고 이렇게 말했다. “빨리 꺼내준다고 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아들, 다 보고 있지? 우리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외로워 하지마. 엄마가 오늘은 계속 옆에 있을게.”
지난 6일엔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6주기 현장 추모제가 열렸다. 김씨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면서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지난달 24일 강씨 어머니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용균이 장례까지 꼭 62일이 걸렸어요. 싸우려면 먹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