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서 초도 납품된 K2 전차·K-9 자주포 앞에서 연설하는 폴란드 대통령.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행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정부 간 거래의 특성이 강한 방위산업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방위산업(K방산)에 관심을 보였던 각국의 수장들은 잇달아 국내 방산업체 방문 일정을 취소하는 등 수출 계약에 빨간불이 켜졌다.
9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방한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당초 경남 사천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이번 사태로 일정을 취소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도 방한(5~7일)을 하루 앞둔 시점에 일정을 전격 취소하면서 국내 기업과의 면담이 무산됐다. 앞서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지난해 5월 유럽 순방중이던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한국과 방산 분야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 좋겠다”고 먼저 언급했지만, 불안한 한국 정세에 발길을 돌렸다.
당초 연내 타결이 임박했던 것으로 관측되던 폴란드 정부의 K2 전차 추가 구입 계약이 한국의 국정 혼란 탓에 연내 체결이 불투명해졌다는 방산 소식통들의 전망도 나왔다. 방산 수출은 기업과 정부 간 또는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체결되는 게 일반적인데, 권력 공백기에 들어서면 제때 대응하지 못해 상대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폴란드 정부는 2차 계약의 일환으로 현대로템과 K2 전차 820대 추가 구매 협상을 막판 단계에서 진행 중이었다. 앞선 1차 계약 180대의 4배가 넘는 물량이다. 수출 차질 우려에 대해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폴란드와의 계약은 국내 업체들이 오랜 시간 추진해왔던 것이라 현 시국과 관계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특히 중동 지역은 국가 정상 간 소통이 계약 체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태로 유럽에 이어 한국 방산업계에 새로운 수출 시장으로 꼽히는 중동에서 K방산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해외 방산협력 활동은 국내 상황과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그드니아 항구에 도착한 K2 전차. 현대로템 제공
증권가에서는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 국가 브랜드가 타격을 입고 수출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증권은 이날 낸 보고서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현재 무기 체계에 대한 의구심,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따른 국내 정치 불안으로 한국 방산 종목의 주가 상승 탄력이 약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국내 주요 방산 기업 5개사의 합산 시가총액은 트럼프 당선인 승리 이후 지난달 말까지 17.2% 하락한 상태다.
위경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달 들어 방산 주가는 반등세에 접어들었지만, 비상계엄(선포 사태)을 시작으로 국내 정세 혼란이 가중됐고 방산 주가는 재차 하락 중”이라며 “과거 두 차례의 탄핵 사례와 비교해볼 때 이번 방산 주가 하락 폭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