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 밖에서 타오른 촛불…네덜란드·프랑스·독일·호주서도 “윤석열 탄핵”

강한들 기자
독일 뮌헨 거주 동포들이 지난 7일 뮌헨 오데온에서 연 ‘윤석열 즉각 퇴진 뮌헨 시국집회’가 열리고 있다. 유재현씨 제공 사진 크게보기

독일 뮌헨 거주 동포들이 지난 7일 뮌헨 오데온에서 연 ‘윤석열 즉각 퇴진 뮌헨 시국집회’가 열리고 있다. 유재현씨 제공

12·3 비상계엄 사태 소식은 고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시민들에게도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이들은 “<서울의 봄> 영화 얘긴 줄 알았다”면서 “속보를 보며 일이 손에 안 잡혔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면으로만 봐야 하는 무력감”도 느꼈다고 했다. 이후 재외한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속속 글이 올라왔다. 네덜란드 한인 페이스북 그룹인 ‘낮은 땅 높은 꿈’에는 “여러분이 고국 멀리 해외로 나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한국 국민이기 때문”이라며 “한국 경제가 무너지면 유학생들은 네덜란드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정말 생존의 문제”라는 글이 게시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은 해외로도 옮겨붙었다. 독일 뮌헨,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호주 시드니에선 지난 7일(현지시간) 수백명이 모여 ‘윤 대통령 탄핵, 국민의힘 해체’를 외쳤다. 독일 뮌헨의 유재현씨(50),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강빛나래씨(37), 프랑스 파리의 박성진씨(55), 호주 시드니의 노현무씨(63) 등 각지에서 집회를 꾸렸던 이들은 9일 “박근혜 퇴진 집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라고 입을 모았다.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인권 광장에서 지난 7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집회가 열렸다. 박성진씨 제공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인권 광장에서 지난 7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집회가 열렸다. 박성진씨 제공

한국인 애인 둔 현지인까지 “ARREST YOON”

이들은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너무 다양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암스테르담 집회를 기획한 강씨는 스무명 정도 예상했는데 70여명이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여행객·유학생은 물론 ‘한국인 애인이 고국에 가 있으니, 나는 네덜란드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집회에 나왔다’는 네덜란드인도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서명’ 목표 82명도 미달됐는데, 이번엔 520여명이 서명했다. 파리 집회엔 벨기에·영국에서 일부러 찾아온 이들을 포함해 총 350여명이 모였다. 독일 뮌헨에도 차로 서너시간 거리에서 온 사람도 많았다.

호주 시드니 집회에는 120여명이 모였다. 집회에 참석한 박진아씨(25)는 기자와 통화하며 “수영을 해서라도 한국에 가고 싶었다”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보민씨(25)는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소중한 한 표 꼭 행사해달라’고 말하면서 정작 여당 의원들이 탄핵안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가장 많이 화가 났다”고 했다.

집회를 제안하자 물심양면 돕겠다는 연락이 쏟아졌다고 한다. 네덜란드 시위를 함께 준비한 강씨는 “여기선 현수막 하나 만드는데 3~4일이 걸린다”며 “그럼에도 코팅된 손팻말을 20장이 넘게 인쇄해온 분도 있었고, 사비로 스피커를 사 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프랑스 시위를 주도한 박씨도 “평범한 동포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역할 분담을 해 시위를 만들었다”고 했다.

시위 장소는 각국의 역사적·상징적 의미가 서린 곳이 선택됐다. 독일 뮌헨 시위는 오데온 광장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아돌프 히틀러가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를 전복하려 했던 곳이다. 나치 치하 시민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거수 경례’를 해야 했는데, 이후 이곳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공간이 됐다. 유씨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현지 경찰이 추천해준 장소”라고 전했다.

네덜란드 시위는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순방 당시 방문했던 ‘담 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광장 한켠에 있는 ‘디올’ 매장 앞에 기념사진도 찍었다. 강씨는 “광장은 윤 대통령 부부가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고, 김 여사의 ‘디올백’ 문제에 대한 풍자의 의미도 담았다”고 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담 광장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윤석열 규탄, 퇴진 요구’ 집회 이후 시위대가 광장 한켠의 디올 매장 앞에서 윤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강빛나래씨 제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담 광장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윤석열 규탄, 퇴진 요구’ 집회 이후 시위대가 광장 한켠의 디올 매장 앞에서 윤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강빛나래씨 제공.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계엄령이라니’

이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는 네덜란드·호주·프랑스에선 상상하기 힘들 일이라고 했다. 강씨는 “네덜란드에서는 외부 침략에 따른 계엄이 아니고서는 비상계엄이 어렵다”라며 “윤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고, 민주공화국에 어울리지 않는 인식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프랑스는 권력을 잘못 휘두르면 ‘단두대’로 응징한다는 역사적 선례가 있다”며 “감히 권력자가 군대를 동원해 총부리를 겨눈다면 내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혼란이 한국의 신뢰도에 미치는 타격을 우려했다. 박씨는 “한국 신뢰도에 상당한 금이 가는 것이 느껴진다”며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재외한인들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강씨는 “윤 대통령이 앞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얘기하면 비웃음을 받을 것”이라며 “교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기존에는 없었던 우려가 생겼다고 한다. ‘비상계엄’이라는 단어조차 잘 알지 못하던 독일 사람들이 독일에서도 비상계엄이 일어날 가능성을 따져본다는 것이다. 유씨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연정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정권을 잡기는 어렵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라면서도 “극우가 급부상하면서 전쟁이 아닐 때도 비상계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우려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 한 교회에서 시드니 촛불행동이 지난 7일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총궐기 대회’를 열고 있다. 노현무씨 제공

호주 시드니 한 교회에서 시드니 촛불행동이 지난 7일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총궐기 대회’를 열고 있다. 노현무씨 제공

“하루 빨리 탄핵” “국힘 해산” 쏟아지는 비판

이들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8일 발표한 ‘윤 대통령의 2선 후퇴와 당정의 공동 국정운영’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노씨는 “선출되지 않은 두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권한을 대신할 수 있냐”며 “국민은 왜 그들이 대통령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도 “대통령 권능을 사적으로 위임하겠다는 것은 헌법에 없는 권력을 나눠 갖는 ‘친위 쿠데타’”라며 “내란에 동조한 국민의힘은 해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통령 탄핵이 이뤄질 때까지 시위를 매주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민주주의를 지키려 거리로 나선 서로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는 말도 했다. 지난 7일 네덜란드 집회에 참석한 제프 파운틴 슈만유럽학센터 대표는 “세계적으로 트럼프 당선이나 푸틴의 전쟁 지속 등 전제정치적 성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화 역사는 국제 공동체가 소중히 여겨야 할 인류의 중요한 자산”이라며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로 파괴된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국회를 지키고 규탄에 나선 모습이 다른 나라 시민들에게도 큰 영감과 용기를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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