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새로운 주가 시작된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앞은 오후 5시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 노트북 가방을 든 직장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모두 한 손에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탄핵!’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학교·직장을 마치고 촛불을 들기 위해 온 이들은 “내란범들 때문에 화가 나서 도저히 주말 집회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오늘도, 내일도 촛불을 들겠다”고 했다.
참여연대·전국민중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후 6시부터 국회 앞에서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을 열었다. 이들은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된 오는 14일까지 매일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평일인데도 집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모였다. 충북 청주에서 온 강명서씨(60)는 낮 12시쯤 여의도에 도착해 집회를 기다렸다고 했다. 강씨는 “윤석열과 그 부역자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들끓어서 안 올 수가 없었다. 토요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집으로 가는 충주행 버스표를 끊어뒀다는 그는 앞으로도 매일 서울집회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험을 앞뒀거나 이제 막 하교한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대학생 지승호씨(24)는 저녁 아르바이트 출근을 앞두고 오후 3시30분부터 국회 앞을 찾아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지씨가 제작한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 들고나온 이 깃발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큰 화제가 됐다. 지씨는 “저녁 일 때문에 집회 참여를 못 하니까 그 전에라도 와서 연대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재치 있는 깃발에 대해 “지금도 집에 가서 누워만 있고 싶은데 너무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면서 “나 같은 집돌이마저 집회로 끌어낸 윤석열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복을 입고 온 중학생 김민수군(14)은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김군은 “뉴스를 보고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이 생각나 잠을 잘 수 없었다”며 “내일 학교에 가기 힘들겠지만 상관없다. 학교 선생님도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속되는 혼란에도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이 정신을 못 차린다”며 울분을 토했다. 건축현장 미장공으로 일하는 김민갑씨(67)는 “뉴스를 보면 울화통이 터져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며 “경제가 죽어서 일거리도 평소보다 30%는 줄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제 살릴 생각은 안 하고 싸우고만 있는 게 말이 되냐”며 “젊은 사람들을 본받아 나 또래 사람들도 집회에 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51)는 국회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직장에서 일찍 퇴근한 뒤 경기 김포시 자택으로 돌아가는 대신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이씨는 “윤석열이 계엄 선포한 날의 분노를 잊지 않기 위해 집회에 왔다”며 “시민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7시40분쯤 시민 자유 발언을 마무리 한 뒤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불법계엄 윤석열 퇴진” “내란동조 국힘 해체” 등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3만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 롯데백화점인천점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 및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하는 시민촛불행사가 열렸다. 경기 수원역에서 열린 경기시민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은 “윤 대통령이 탄핵 또는 체포될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 문화제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남 천안·세종, 전북 전주, 부산, 제주에서도 퇴근길 시위와 촛불집회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