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시상식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시낭송 듣는 듯”

스톡홀름 | 박송이 기자

부둣가 ‘문학의 밤’ 행사

<b>빠져드는 사람들</b> 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역대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낭독하는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려 현지 교민 신미성씨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빠져드는 사람들 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역대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낭독하는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려 현지 교민 신미성씨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수상자들 작품 낭독회
스톡홀름 교민 신미성씨
‘작별하지 않는다’ 읽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8일 오후 5시(현지시간), 해가 일찍 내려앉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청사 근처 부두는 벌써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 적막을 깨고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국어로 울려 퍼졌다.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각자의 언어와 스웨덴어로 낭독하는 노벨주간의 ‘문학의 밤’ 행사로, 이날 그라치아 델레다, 아니 에르노, 올가 토카르추크와 함께 한강 작가의 작품이 낭독됐다.

낭독이 이루어진 장소에는 스웨덴 왕립공과대학 건축학과가 제작한 ‘돔 아데톤(de aderton)’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이 구조물의 위쪽에는 역대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18명의 초상이 빛으로 떠올라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추운 바람이 매서웠지만, 이국의 언어로 울리는 작품을 직접 듣기 위해 100여명이 부두에 모여들었다.

이날 한강 작가의 작품은 스톡홀름 시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 교민 신미성씨가 맡았다. 한국문화원의 제의로 낭독을 하게 된 신씨는 한강 작가의 작품 중 낭독할 책과 구절을 직접 골랐다고 했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어머니와 아홉 살 경하가 고통을 마주하는 그 장면이 유독 가슴에 와닿아서 이 부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스웨덴어 낭독은 스웨덴 배우 안나 시세가 담당했다.

이날 낭독회장을 찾은 스톡홀름 시민 마리안은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환한 빛이 있는 ‘노벨 라이트’를 친구들과 함께 구경하기 위해 왔다가 낭독회에도 오게 됐다”며 “스웨덴에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들에 관심이 많은데 오늘 낭독된 4명의 작가 중 특히 한강 작가의 작품이 기대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마치 시낭송을 듣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고 이 순간을 공유한 것이 특별했다”면서 “참여 중인 북클럽에서 함께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이상현씨(가명)는 “친구를 만나러 스톡홀름에 왔다가 마침 노벨주간에 이런 행사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오면서 암스테르담 공항을 경유했는데, 그곳 공항서점에도 한강 작가의 작품이 진열돼 있어 전 세계적인 한 작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낭송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일부 구절만으로도 큰 감동이 있었다”고 했다.

낯선 언어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조용히 낮춘 채 작품에 귀를 기울였다. 차가운 밤공기와 따뜻한 빛이 어우러진 이날 스톡홀름 부두에서 한국어로 낭송된 한강 작가의 문장은 언어의 경계를 넘는 울림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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