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내란, 현실의 내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1주일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1년 같은 하루’의 나날들이다.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 2시간 만에 국회는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아찔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고, 긴박한 시간이 이어졌다. 밤 12시경 국회 앞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그 밤중에도 여의도 국회로 달려오고 있었다. 시민들은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섰고, 출동한 계엄군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6시간 만에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12월7일,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1분50초. 누구는 라면 물 끓는 시간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담화에서 그는 “절박한 심정”을 강조했다. 무엇을 사과할지 모르면서 사과하라니 사과했다던 기자회견과 같았다. 비상계엄이 엄청난 일임에도 국민들에게 겨우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이 죄송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계엄군이 선관위에 투입되었다는 소식이 가장 황당했다. 이것은 극우 유튜버들이 지난 4월10일의 22대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던 맥락과 일치한다. 일국의 대통령이란 자가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을 맹신하고 있었다니. 매일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북과의 교전 상황을 만들려고 부심했고, 오래전부터 계엄을 준비했고, 방첩사령관이 계엄 문건을 작성한 것은 11월이었다는 점도 새로 드러난 일들이었다.

젊은층, 탄핵집회를 콘서트장으로

만약에 포고문대로 계엄이 시행되었더라면, 국회의장과 여야 당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어딘지 모를 곳에 감금되어 고문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계엄군이 장악하고, 집회·시위·언론·출판의 자유는 봉쇄되고, 검열제도가 시행되고 있을 것이다. 평소 정부를 비판하던 세력들을 ‘삼청교육대’ 같은 곳에 잡아넣어서 무조건 항복과 복종을 강요할 수도 있다. 아니 그전에 계엄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향한 발포가 있고, 수백명이 될지 수천명이 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계엄군의 총을 맞고 학살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게 계엄인데, 야당 협박용으로 한번 써봤다는 자가 대통령이다.

헬기가 국회 상공을 날고, 장갑차가 국회 앞 대로로 들어오던 그 상황을 우리는 1980년에 보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학생시위를 진압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헬기가 상공에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윤석열 정권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헬기가 날고,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다. 멀지도 않은 2022년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 파업 때의 일이다.

12월7일 오후, 여의도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나이 든 사람보다 청년층이 더 많았다. 집회 분위기는 8년 전 박근혜 탄핵 집회 때보다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들은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탄핵 집회판을 경쾌한 콘서트장으로 바꾸었다. 여의도의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들의 에너지는 대단했다. 여의도에만 100만명 넘는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운집해 퇴진과 탄핵을 외쳤다. 전국 주요 도시들에도 시민들이 모였다.

그런 시민들의 열망을 외면하고 국민의힘은 아예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내란범 윤석열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집단적으로 표현했다. 12월8일에는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두 사람이 나눠서 대통령 놀이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제2의 내란 국면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탄핵 열차는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100만이 모였으니 이제 200만, 300만명도 모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저들 시민을 누가 이길 것인가?

투쟁자 기억하며 탄핵열차 타고 싶다

2년여 전, 헬기가 하늘을 나는 거제도 대우조선 현장에서 하청노동자 유최안은 0.3평 쇠창살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면서 죽음을 결심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마침 오늘은 현대 인권의 지표가 된 세계인권선언이 유엔에서 채택된 지 76년이 되는 날이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격분시키는 만행을 초래”하였다는 대목과 지금의 현실을 연결해본다. 윤석열 내란 세력이 비상계엄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준 점은 없을까? 평소 수시로 인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짓을 반복하는 그들을 용인한 결과가 아닐까?

오늘도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소리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기억하면서 ‘탄핵 열차’를 타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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