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빛, 스톡홀름 밤을 수놓다

스톡홀름 | 박송이 기자
스톡홀름 시청의 외벽을 수놓은 미디어파사드에 한강 작가의 사진과 문장이 등장했다. 박송이 기자

스톡홀름 시청의 외벽을 수놓은 미디어파사드에 한강 작가의 사진과 문장이 등장했다. 박송이 기자

스톡홀름의 밤은 길다. 무려 18시간 동안 어둠이 내려앉는 이 도시에선 햇빛 대신 수많은 조명이 불을 밝힌다. 그 중에서도 노벨 주간의 조명은 단연 특별하다. 매년 새로운 주제로 꾸며지는 노벨 주간 조명은 여러 예술가의 조명 작품으로 스톡홀름 곳곳의 밤을 환하게 수놓는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스톡홀름 시청 외벽을 미디어 파사드로 채운 ‘리딩 라이트(Leading Lights)’이다.

6일부터 15일까지 볼 수 있는 ‘리딩 라이트’는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65명의 여성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9분짜리 영상인 ‘리딩 라이트’는 여성 노벨상 수상자 65명의 얼굴을 차례로 비춘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도 이 영상에 등장한다. 한강 작가의 이미지와 함께 “하얀 것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White, by nature is nothing at all, but within that nothingness, everything exists.)는 작품 <흰>에 수록된 문장이 한국어로 한번, 영어로 한번 떠오른다.

노벨재단은 ‘리딩 라이트’를 “이 작품은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업적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프레스투어 가이드를 맡은 라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올해는 특히 여성 노벨상 수상자들을 기념하는 작품이라 더 의미가 깊다”며 “다음 세대가 기존에 여성에게 제한되었던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돔 아데톤(de aderton)’에 걸린 한강 작가의 초상. 박송이 기자

‘돔 아데톤(de aderton)’에 걸린 한강 작가의 초상. 박송이 기자

한 작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따른 작품은 ‘돔 아데톤(de aderton)’이 있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 건축학과가 제작한 이 조명 작품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셀마 라게를뢰프(1909년)부터 한강(2024년)까지, 총 18명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초상을 조명으로 표현했다. 라라는 “처음에는 17개의 초상으로 디자인된 이 작품은 한 작가가 수상하면서 18개로 늘어 지금과 같은 건축물이 되었다”라고 전했다.

구 시가지인 감라스탄에 위치한 스웨덴 아카데미, 노벨박물관 등에서 한 작가의 흔적이 눈에 띈다. 노벨문학상 입구에는 한 작가가 기증한 작은 찻잔이 보였다. 한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이 찻잔에 홍차를 자주 우려내 마셨다고 한다. 찻잔과 함께 그가 쓴 메모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 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번 이상 걷기 / 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잔씩만 마시기”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마무리했다.

스웨덴 베크만스 디자인대 학생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드레스 앞에서 한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C) Nobel Prize Outreach. Photo: Anna Svanberg

스웨덴 베크만스 디자인대 학생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드레스 앞에서 한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C) Nobel Prize Outreach. Photo: Anna Svanberg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서명이 적힌 의자와 함께 한 작가가 서명한 의자도 전시돼 있다. 수상자들이 의자에 쓰는 친필 서명을 하는 전통은 2001년부터 시작됐다. 한편 스웨덴 베크만스 디자인대 학생들이 올해 노벨상 수상자을 떠올리며 디자인한 드레스도 전시됐다. 한 작가를 연상하며 제작한 드레스는 흰색과 검은색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드레스 아래쪽 주름 사이에는 한강의 작품 속 문장들이 영어로 새겨져 있고 드레스 곳곳에 불에 탄 듯한 자국이 나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침묵, 기억, 역사, 트라우마, 애도라는 모티프를 한강의 소설에서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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