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정 책임자가 모호해진 여파가 대중국 외교에도 미치고 있다. 당장 신임 주중 한국대사 부임과 5개월째 공석 상태인 주한 중국대사 임명 관련해서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재호 주중대사는 당초 10일 오후 3시 타국 외교관과 중국 측 인사, 한국 교민들이 참여하는 이임 행사를 열 계획이었으나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취소했다. 정 대사는 당초 이달 중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귀임 시점을 비롯해 향후 일정 전반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정 대사의 후임으로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내정했다. 김 내정자가 대사로 부임하려면 국무회의 동의를 받고 대통령의 신임장을 받은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제정해야 한다. 정 대사 귀임 후 이 같은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김 내정자는 중국 정부의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주재국 동의)을 이미 받았지만 윤 대통령이 김 내정자에게 신임장을 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 대통령이 직무에서 손을 뗐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신임장을 수여하면 부당하게 권한을 행사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김 내정자가 부임하더라도 중국에서 원활하게 직무수행을 하기도 어려워졌다. 김 내정자는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한·중관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임기 내내 ‘불통’, ‘갑질’ 논란이 있었던 정 대사보다는 원활한 소통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대사관 안팎에서 나왔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만큼 한·중관계 개선 등 외교적 난맥상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내란죄로 수사받는 대통령이 임명한 대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됐다. 윤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동기로 지목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에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중국 공산당이 제휴해 지난 4월 총선 결과를 조작했다는 내용까지 있다. 김 내정자가 중국 측으로부터 환영받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이빙 신임 주한 중국대사 역시 누구에게 신임장 제출을 하게 될지 불투명해졌다. 다이 대사는 아그레망을 받고 이달 내 부임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한국의 내정’이라며 논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국방부가 비상계엄 선포 전 북한과 국지전을 일으키려 한 정황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 상황에서 심기가 불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지난 3월 양회 계기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원한다”면서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이는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인식이지만, 한국 측의 계엄용 국지전 모의가 사실이라면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에 정당성이 더욱 실리게 된다. 시 주석은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서 전쟁과 혼란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중 양국은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의 방한과 정상회담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이 역시 한국의 정치 일정이 멈추면서 불투명해졌다. 윤 대통령의 거취가 늦어질수록 준비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