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임기가 끝났다. 방심위 직원들은 위원장으로 다른 사람이 오겠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12월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지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을 방심위에 대거 접수했다는 ‘민원 사주’ 의혹이 제기된 터였다. 류 위원장은 언론 과잉 제재 논란에도 휩싸였다.
예상은 빗나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류 위원장 임기 종료 하루 만에 그를 재임명했다. 방심위 직원들은 ‘윤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류 위원장은 나가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류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 중 한 명인 탁동삼씨(49)를 10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부끄럽지 않으려고’ 공익제보를 했다는 탁씨는 “무리한 가짜뉴스 심의, 법규에 맞지 않는 통신 심의 등 류 위원장의 해악을 보다 빨리 청산할 방법은 대통령 임기를 끝내는 것뿐”이라며 “윤 대통령 탄핵이 누구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탁씨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보면서 “‘미쳤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당신도 내일 아침에 잡혀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보고 실제로 잡혀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통장에 있는 돈을 아내에게 모두 이체하기도 했다. 탁씨는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민을 ‘반국가세력’으로 여겼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며 “이렇게까지 반민주적이고, 헌법을 부정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계엄군이 방송인 김어준씨를 체포하려 했다는 소식을 보고 떠오른 장면도 있었다. 류 위원장이 방심위원으로 위촉됐을 때 통신심의팀장으로서 업무보고를 했던 때였다. 류 위원장은 첫 질문으로 “김어준이 유튜브에서 가짜뉴스를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제재할 수 있냐”고 물었다. 탁씨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윤석열 정부가 처음부터 류 위원장을 통해서 방송사에는 과징금을,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언론은 차단해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탁씨는 각종 정부 위원회가 ‘무너져 간다’고 느꼈다고 한다. 방심위는 전통적으로 위원 간 토론과 합의를 통해 심의를 해왔다. 하지만 류 위원장 취임 이후 토론은 사라지고 ‘다수결’만 남았다고 했다. 탁씨는 “위원 간 토론과 합의는 방심위를 비롯한 모든 ‘위원회’ 조직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라며 “최소한의 가치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위원이 되면서 방심위뿐 아니라 인권위, 권익위 등도 무너져간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단죄가 이뤄진다면 이전까지 지켜왔던 최소한의 민주적 가치를 다시 존중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현재 탁씨는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탁씨는 “나는 잘못한 게 없어서 당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경찰 수사를 받다 보면 많은 에너지가 든다”며 “심적으로 지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탁씨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탁씨는 “계엄군들의 ‘머뭇거림’이 모여서 큰 방향을 바꿀 수 있었는데, 우리도 류 위원장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를 내면서 ‘방송 장악’을 알리고, 지연시킨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게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