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해온 상속·증여세 완화를 위한 세법 개정이 국회에서 무산되면서 내년에도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현행대로 50%, 자녀공제 한도는 5000만원으로 유지된다. 다만 내년 1월부터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와 관련해 발생한 소득에 부과할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폐지가 확정됐고,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도 2027년으로 다시 미뤄졌다.
국회는 10일 본회의에서 최고세율 인하 등을 담은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부결시키고, 여야가 합의한 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은 통과시켰다. 법인세법 개정안 등 10개 법안도 정부 원안대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등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신용카드 세액공제율 조정을 담은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은 수정 의결됐다.
정부가 제출한 올해 세법 개정안의 핵심은 상속·증여세였다. 앞서 정부는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현행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공제 한도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늘리는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향후 5년간 약 18조원의 상속·증여세 감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최고세율 인하는 상위 1% 부자를 위한 감세안’이라며 정부안에 반대했다. 다만 물가상승률은 감안해 약 25년간 거의 바뀌지 않은 인적공제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데에는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다. 이에 배우자공제 한도를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늘리는 데 잠정 합의하기도 했다. 이후 조세소위원회 협상과정에서 상속·증여세 절충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로 여파로 세법 관련 협상은 중단됐고, 결국 인적공제 확대도 없던 일이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증세법 부결로 내년 세액에 2조4000억원 순증효과가 생겼으나, 다른 세법 조정을 통해 세입 총액은 정부 원안과 비슷한 수준으로 결정됐다”면서 “이번에 통과되지 못한 반도체 세액공제 등 여야 합의 사안은 내년 초에라도 다시 진행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감세안도 줄줄이 좌초됐다. 밸류업 기업에 투자하면 배당소득세를 감면해주는 배당소득분리과세도 무산됐다. 상속평가시 최대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하는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하겠다는 계획도 물 건너 갔다. 앞서 정부는 경영권 프리미엄의 측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할증평가를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부자감세 논란이 일었다. 주주환원을 확대한 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 지원도 무산됐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지원 확대와 전자신고세액공제 축소도 무산됐다. 신용카드 등 사용에 따라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공제율을 축소하는 계획과 통합고용세액공제 개정도 없던 일이 됐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은 그대로 통과됐다. 민주당은 당초 금투세 시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증시가 부진하고 투자자 반발이 거세지자 입장을 바꿨다. 가상자산 과세 역시 과세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정부 논리를 받아들여 2년간 과세를 유예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금투세 부과가 무산되면서 실제 부과했을 때보다 연간 약 1조5000억원의 세수가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금투세 폐지로 인한 세수감소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상속세에 비하면 제한적”이라고 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윤석열표 3차 부자감세의 핵심인 상속세 인하는 막았지만,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그 후과가 크다”면서 “조세저항이 일어나면 정치가 책임있게 설득하고 정책추진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해야 했지만 국회는 그 역할을 외면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