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0일 정국안정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하야 시기를 내년 2월이나 3월로 설정하고 당내 논의를 진행 중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에는 동참하지 않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담화를 통해 발표한 ‘질서 있는 퇴진’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계획은 그 자체로 위헌이란 지적이 많다. 즉시 하야나 탄핵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권한을 ‘질서 있게’ 정지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내란죄 핵심 피의자에게 군통수권 등 대통령의 권한을 유지시켜 주고, 수사에 맞설 힘을 준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①“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권력을 위임할 수 없다”
소위 질서 있는 퇴진 계획은 윤 대통령이 퇴진 전이라도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고, 한 총리가 책임총리로 실질적인 대행 역할을 하면서 당정이 국정을 공동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학계는 이 방안은 위헌이라고 지적한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지난 8일 MBC라디오에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의 권력을 대통령 개인이 누구에게 위임·양도할 수도 없다”며 “(담화 내용은) 위헌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있으면서 특정 정당에게 권력을 위임·이양하는 건 우리 헌법이 예정한 방식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질서 있는 퇴진은 헌법에 규정된 방식이 아니다. 헌법은 대통령의 사망,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정도의 신변상 문제, 탄핵안 가결 시에만 권한대행을 두게 했다. 위헌 논란이 있는 현 체제를 3~4개월 더 유지한다면 그만큼 무질서 상태가 길어질 수 있다.
더구나 한 대표와 한 총리는 각각 여당 대표와 행정부를 통할하는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비상계엄 발동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 현 체제가 이어지면 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모순도 계속된다.
②내란죄 주범의 군통수권과 인사권이 그대로
내란죄 주범으로 지목된 윤 대통령의 권한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도 문제다. 국방부는 군통수권이 여전히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혔다. 북한 등 외부로부터 군사적 위협이 있을 때 대응할 권한이 내란 수괴 혐의자에게 주어진 상태란 것이다. 지난 7일 여의도 집회 현장에서 만난 김모씨(42)는 “비상계엄 때 불안해서 한 숨도 못잤다. 군대를 이렇게 함부로 움직이는 대통령을 더 이상 어떻게 믿나”라며 ‘대통령 탄핵’ 구호를 외쳤다.
이날 나온 관보에도 윤 대통령 이름으로 17건의 대통령령이 재가·공포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윤 대통령의 대내외적 권한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는 한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과 새로운 내각 인사 임명도 하게 된다. 특히 야당이 오는 12일 ‘윤석열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통과시킨 후 대통령의 적극적 권한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권한을 행사하면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는 주장을 하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 역시 이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군 통수권 등 대통령 권한을 법적으로 정지시키기 위해선 탄핵 밖엔 없다”며 ‘질서 있는 퇴진’의 법적 한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③대통령실 압수수색 막을 힘 유지해줘
내란죄의 핵심 피의자가 수사를 방해할 수단을 그대로 용인해주는 문제도 있다. 지금까지 검찰이나 특검이 대통령실(청와대)을 압수수색할 때마다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라는 이유로 난항을 겪는 일이 많았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을 수사한 특검도 청와대의 거부로 압수수색을 하지 못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 검찰이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구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사기관이 윤 대통령의 신병을 할 때 현직 대통령으로서 경호를 받는 윤 대통령 측과 충돌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상황이 복잡하다. 대통령 구속 상태를 헌법 68조 2항의 ‘궐위’로 인정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논란이 있는 상태다. 궐위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구속된 상태에서 윤 대통령이 옥중 업무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④불확실성에 추락하는 경제·외교
경제학자들은 흔히 경제에 가장 안좋은 요인이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금융권에선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고 ‘질서 있는 퇴진’ 기조가 유지될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다고 입을 모은다.
증시는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약세장을 지켜 오던 개인 투자자들마저 매도에 나서면서 연일 추락했다. 이날 소폭 회복되긴 했지만 지난 9일까지 나흘 동안 시총이 144조원 증발했다. 환율도 1402원에서 1430원대로 급등했다. 증권가에선 코스피가 2250까지 떨어지고, 환율이 145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금 상태면 한 대표가 강조한대로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됐지만, 여권의 결정에 의해 주식에서 손해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탄핵 가결시 추가 계엄 가능성 소멸, 정치 리스크 완화로 주가를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교도 중단 상태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외교의 최종 결정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외교 분야를 포함한 정부의 국정운영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의 틀 내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윤 대통령이 결정권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출국금지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