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의날 기념식장 앞
참석 막고 입장 표명 요구해
내부서도 “즉각 입장 발표를”
“계엄에 침묵하면서 어떻게 인권을 논할 수 있나.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는 퇴진하라!”
전국 36개 인권단체가 모인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1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76회 세계인권의날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막아서며 이렇게 밝혔다.
이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 안 위원장에 대해 “비상계엄에도 권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 부끄럽다”며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9시45분쯤 기념식 행사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고 불리는 인권위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지 못하고 여전히 현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의견 표명에 반대하는 안 위원장과 김용원·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의 퇴진을 촉구했다.
안 위원장과 인권위는 비상계엄 사태 일주일이 지났지만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인권위 내부망에는 침묵하는 안 위원장에 대해 “국민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당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즉각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전임 인권위원장과 상임·비상임 위원들도 지난 6일 인권위의 입장 표명 및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회견을 마친 뒤 안 위원장의 기념식 참석을 막기 위해 기념식장으로 통하는 3개 통로 앞에 의자를 펴고 앉아 통행을 막았다. 안 위원장은 행사 10분 전인 오전 10시20분 행사장 앞에 왔지만 이들의 저지로 바로 입장하지 못했다. 이들은 안 위원장에게 “개인적 입장이라도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안 위원장은 미소를 띤 채 “제가 다 들었으니까”라고만 말했다.
안 위원장은 ‘비상계엄 사태의 인권 침해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비상계엄과 관련해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이미 안건이 상정됐고, 어제 많은 의견이 있어서 그 부분을 최대한 가능한 한 빨리 수렴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안 위원장은 행사 시작 시각인 오전 10시30분을 10분쯤 넘긴 뒤에야 식장에 입장했다.
기념식에 참석해 있던 김수정·원민경 전현직 인권위 비상임위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김 전 위원은 “인권위에서는 아무 입장도 내지 못하는 상태인데, 그런 상태에서 인권위원장이 어떤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오늘 내란의 주범인 대통령의 표창 수여도 있는데 그런 행사가 절대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기념식 거부 이유를 밝혔다.
안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인공지능, 자연재해, 사회재난을 언급하며 “최적의 대응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너무 늦지 않게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충실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는 그의 개회사에서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