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향, 신라 향로, 고려 향완…유물로 만나는 1500년 향(香)문화사

도재기 선임기자

호림박물관, ‘향, 푸른 연기 피어오르니’특별전

삼국시대 이래 향 관련 공예·문헌·회화 등 대거 선보여…“조형미 감상에 인문학 정보도 풍성”

호림박물관이 우리나라 향 문화사를 삼국시대 이래 유물들로 살펴보는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금동향로’(보물, 8세기, 익산 미륵사지 출토,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왼쪽)와 ‘청동 연꽃모양 병 향로’(청동 ‘대강3년명’ 연지형 병향로, 고려, 1077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호림박물관이 우리나라 향 문화사를 삼국시대 이래 유물들로 살펴보는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금동향로’(보물, 8세기, 익산 미륵사지 출토,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왼쪽)와 ‘청동 연꽃모양 병 향로’(청동 ‘대강3년명’ 연지형 병향로, 고려, 1077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향기로운 향(香)은 고대부터 인도·이집트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방식으로 활용됐다. 악취를 없애고 해충을 막는 방향·방충효과는 매력적이면서 실용적이었다.

무엇보다 향은 종교의식, 특별한 의례에 자주 사용됐다. 신성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조성,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상징적 의미에서다.

향이 이 땅에 전래된 것은 2000여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향이 의례의 중요 요소이던 불교가 들어오면서 더 확산된다. 동아시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등 향과 관련된 삼국시대 유물들은 많이 남아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에서  지난 2009년 출토된 백제시대의 ‘청동합’(7세기, 국보, 왼쪽)과 청동합 속에 담겨 있던 향으로 추정되는 녹색의 유기물질.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에서 지난 2009년 출토된 백제시대의 ‘청동합’(7세기, 국보, 왼쪽)과 청동합 속에 담겨 있던 향으로 추정되는 녹색의 유기물질.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고려시대에는 의례, 신앙행위를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향을 피우는 문화가 널리 정착됐다. 향과 관련된 각종 분향도구들도 발달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같은 문헌기록, 여러 재질의 향로·향완 등의 유물을 통해 당시 향 문화를 알 수 있다. 향 문화는 조선시대에도 계속됐고, 지금도 ‘아로마 테라피’ 등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다.

고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향 문화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문화사적 의미, 분향도구의 예술적 심미성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이 신사분관에 마련한 특별기획전 ‘향(香), 푸른 연기(靑煙) 피어오르니’다.

신라시대 ‘토기 향로’(양산 북정리 출토, 6세기, 국립김해박물관 소장, 위) 와 ‘금동병향로’(군위 인각사 출토, 9세기, 불교중앙박물관 소장, 아래 왼쪽), ‘청동 탑모양 향합’(통일신라 9~10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신라시대 ‘토기 향로’(양산 북정리 출토, 6세기, 국립김해박물관 소장, 위) 와 ‘금동병향로’(군위 인각사 출토, 9세기, 불교중앙박물관 소장, 아래 왼쪽), ‘청동 탑모양 향합’(통일신라 9~10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특별전에는 삼국시대~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향과 관련된 각종 공예품, 그림과 전적, 실물의 향 등 모두 170여 점이 3개 전시실에 선보이고 있다. 국보 1건, 보물도 11건 등 호림박물관 소장품과 국립중앙박물관 등 17개 기관, 개인 소장품이 망라된 대규모 전시다.

전시는 향 재료들과 향 문화의 정착과정을 살펴보는 ‘여향(餘香), 함께한 향기’(1부)로 시작한다. 이어 종교의례에 사용된 분향도구 등을 통해 향이 지니는 갖가지 의미를 파악해 보는 ‘공향(供香), 천상의 향기’(2부), 개인적 취향과 취미·향의 실용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완향(玩香), 애호의 향기’(3부)로 구성됐다.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고려 1344년, 불교중앙박물관 소장, 위 왼쪽)과 ‘청자 사자장식 향로’(고려 12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위 오른쪽), 고려시대에 은으로 만든 ‘은제 풍경무늬 향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고려 1344년, 불교중앙박물관 소장, 위 왼쪽)과 ‘청자 사자장식 향로’(고려 12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위 오른쪽), 고려시대에 은으로 만든 ‘은제 풍경무늬 향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우선 관람객의 눈길을 잡는 것은 삼국시대 이래의 다양한 향로들이다. 향을 피운다는 기능은 같지만 형태나 재질, 조형미는 시대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전시장에서는 1500여년 전 흙으로 빚은 신라의 ‘토기 향로’(양산 북정리 출토), 통일신라시대의 ‘금동 향로’(보물·익산 미륵사지 출토)와 ‘금동 병향로’(군위 인각사 출토), 사자장식의 고려 청자 향로, 조선시대의 ‘백자 향로’와 종묘에서 사용된 ‘유기 향로’ 등 시대별 주요 향로를 만날 수 있다.

수십 여점에 이르는 다양한 향로를 통해 시대상을 읽어내고, 조형미를 감상하며, 당대 미적 감각이나 제작기술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향로에 녹아든 당대 사람들의 소망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한자의 ‘향’ 글자 모양을 한 ‘백자 청화투각 향자모양 향꽂이’(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위)와 무덤 부장품으로 제작된 ‘백자 향로와 향합’(조선 16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아래 왼쪽), 조선시대 종묘 제례에 사용된 ‘유기 향로와 향합’(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한자의 ‘향’ 글자 모양을 한 ‘백자 청화투각 향자모양 향꽂이’(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위)와 무덤 부장품으로 제작된 ‘백자 향로와 향합’(조선 16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아래 왼쪽), 조선시대 종묘 제례에 사용된 ‘유기 향로와 향합’(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1300여년 전 백제시대의 향으로 추정되는 유기물질도 관심을 끈다. 지난 2009년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국보) 해체 과정에서 사리를 봉안한 사리공이 발견됐고, 사리공 안에서는 백제 무왕 시기인 639년에 안치한 많은 유물이 나왔다. 그 중 일부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란 이름의 국보로 지정됐다. 그 사리장엄구의 하나인 ‘청동합’(국보)에는 향으로 보이는 짙은 녹색의 유기물질이 남아 있다. 전시장에는 ‘청동합’과 내부 유기물질이 침향·백단향·자단향·정향·용뇌향·감송향·유향 등 각종 향 재료들과 함께 선보인다.

향 문화의 확산은 분향도구 발전을 이끌었다. 향로는 물론 향을 담는 작은 향합, 높은 굽과 넓은 전을 가진 커다란 향로인 향완, 향꽂이, 몸에 지니거나 방향제로 사용한 향주머니(향낭) 등이 대표적이다. 삼국시대 이래의 분향 도구들은 실용성·기능성에 더해 조형적 아름다움도 담겨 있다.

향낭이 그려져 있는 ‘채제공 초상화(시복본)’(보물, 조선 1792년, 수원화성박물관, 위)와 조선시대 향낭이자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석류 불수무늬 향낭’(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향낭이 그려져 있는 ‘채제공 초상화(시복본)’(보물, 조선 1792년, 수원화성박물관, 위)와 조선시대 향낭이자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석류 불수무늬 향낭’(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림박물관 제공

청동으로 만든 향로에 은선을 상감기법으로 장식한 ‘청동 은입사 향완’(1344년·보물), 한자 ‘香’(향) 모양의 향꽂이인 ‘백자 청채투각 향자모양 향꽂이’(19세기), 종묘에서 사용된 향합으로 절제미가 돋보이는 ‘유기 향합’ 등이 주목된다. 향낭은 주로 직물로 짠 형태인데, ‘석류 불수무늬 향낭’(19세기·국가민속문화유산) 등은 세밀한 장식이 두드러진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공예품 외에 화면 속에 향낭이 그려진 ‘채제공 초상화(시복본)’(보물·1792년), 왕실 혼례에서 향을 활용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조선 의궤인 ‘순종순명후 가례도감 의궤’(보물·1882년), 향을 언급하고 있는 고려시대 불경 등 관련 자료들도 살펴볼 수 있다.

호림박물관 특별기획전에 나온 삼국시대 이래의 다양한 형태, 재질의 향로들(왼쪽)과 고대부터 널리 활용된 여러 향 재료들. 도재기 선임기자

호림박물관 특별기획전에 나온 삼국시대 이래의 다양한 형태, 재질의 향로들(왼쪽)과 고대부터 널리 활용된 여러 향 재료들. 도재기 선임기자

호림박물관 유진현 학예연구부장은 “이번 전시는 유구한 우리나라 향의 문화사를 개괄하고자 했다”며 “향과 관련된 다양하고 유익한 인문학적 정보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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