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으로 우리 가족이 풍비박산 났는데, 이 땅에 다시는 없을 거로 생각한 역사가 또 반복됐다.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충격받았다.”
삼청교육대 피해 유가족인 오수미씨(55)는 지난 3일 44년 만에 처음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 수업을 받고 귀가했다. 그날 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0년 이후 40년 넘게 숨죽여 지내온 피해자들은 그날 낮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한 발 내딛었고, 밤에는 도 한 번의 트라우마에 휩싸여야 했다. 다 지난 일이라 생각했던 계엄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아버지 오광수씨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을 발동한 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실종됐다. 당시 오씨 나이는 11살이었다. 아버지가 삼청교육대에 잡혀갔다는 사실도 3년 전에야 알았다.
집안은 말그대로 풍비박산 났다. 아버지의 행방불명, 어머니의 가출 후 오씨 3남매는 길거리와 보육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오빠와 남동생은 40대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씨는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그런 일이 생길 것이라 0.001%도 의심하지 않았다”라며 “전쟁을 겪게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삼청교육대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로 달려가려는 오씨를 다른 피해자들이 말렸다. 그는 “피해자들은 무섭고, 소름 끼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두려움에 떨며 밖으로 안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계엄 직후 오씨는 귀가하지 않은 아들에게 전화해 “위험하니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 중에는 10대 때 끌려간 이들도 많았다. 오씨가 아들을 먼저 떠올린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기구하게도, 아들은 충암고에 다닌다. 윤 대통령 등 비상계엄 주도자들이 다녔다는 이유 때문에 학생들이 교복도 입고 다니지 못하는 그 학교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인 윤호상씨(77)도 윤석열 정부의 역사 왜곡에 치를 떨어왔다고 했다. 민족 교육자이자 항일 독립운동가 학산 윤윤기 선생의 아들인 윤씨는 “지금까지도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충분히 진상규명되지 않았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역사·과거사 조사 기구에 전부 뉴라이트 출신을 기용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켰다”고 말했다.
윤씨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게 45년 전인데, 이를 재현하는 건 아주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우리나라 국격이 하루아침에 추락했다. 내란에 공조한 사람들은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씨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여당 의원들을 향해 “내란 공범”이라며 “국민들이 부여한 권리를 포기했다. 윤 대통령과 다를 바 없는 내란의 동조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