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한강의 ‘언어’와 계엄

김광호 논설위원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연결한다.”

한강 작가가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 후 연회 연설에서 밝힌 소감이다. ‘사유하는 존재’ 인간은 언어로 표현되고 기록된다. “생각이 자라나는 영혼의 피”(비트켄슈타인)인 언어는 기록으로 남아 시공을 초월해 인간을 잇는다. 연결된 언어는 인간을 각성시키고, 그 힘 앞에서 어떤 거짓도 무력하다. 인간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

비상계엄 그날(3일) 밤 시민들은 연결된 인간의 힘이 얼마나 강인한지 증거했다. 그 힘이 언어에 깊이 기대고 있음도 목도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 언어가 전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실시간의 ‘동시성’을 가졌다는 것일 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민들은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150분 동안 언어를 나누고, 행동으로 옮기며 놀랍게 연결됐다.

그래서 모든 폭력은 ‘말’을 빼앗는 것부터 시작한다. 1980년대 신군부가 고통스러운 ‘광주의 언어’를 오래도록 앗아갔던 것처럼, 그 밤 내란 세력은 ‘포고령’으로 언어 강탈부터 시도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인간이 초연결된 시대에 그런 시도는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 한강 작가는 지난 6일 회견에서 “(1980년 광주와) 2024년 겨울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돼 모두가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다”고 했다.

언어는 살아남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일’(한강)을 가능케 한다. 광주에서 살해된 젊은 야학교사의 일기 속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양심의 말은 <소년이 온다>로 부활해 며칠 전 시민을 연결했다. 시민들은 촌각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진실을 가려낼 유일한 기준은 시간의 지속이고, 말은 어떤 물질보다 오래 시간을 견뎌내기에 가장 진실하다”고 했다. 문학으로 이어진 두 여성작가의 ‘영혼의 피’를 따라가다 보면 언어로 연결되는 한 인류는 영원히 ‘진실’ 속에 살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계엄의 어둠을 지나는 우리에게 한강의 언어가 건네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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