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국회 질의서 ‘자인’
회의 기록·부서·국회 통고
헌법상 요건 모두 못 갖춰
대통령실 ‘계엄 안건’ 비공개
회의 발언 요지도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2·3 비상계엄 선포 전 열린 국무회의를 두고 ‘국무회의가 아니었다’고 11일 밝혔다. 헌법은 계엄 선포·해제 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데 그 같은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엄 선포에 필요한 총리 등의 부서(서명), 국회 통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계엄 요건은 물론 헌법이 규정한 절차를 모조리 위반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 총리는 이날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전 열린 국무회의를 두고 “절차적,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회의 기록과 속기, 개회 선언, 종료 선언 등이 이루어졌느냐”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국무회의는 국무회의가 아닌 게 맞느냐”는 재질의에 한 총리는 “그 말씀에 동의한다”고 했다. 정부는 그간 계엄 선포가 정족수를 맞춘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이뤄졌다고 설명해왔다.
헌법 89조는 계엄 선포와 해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는 이런 절차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국무위원들은 계엄 시각과 계엄사령관 등 구체적 내용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 총리는 “계엄을 한다는 것만 있었지 구체적인 내용을 깊게 논의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무회의는 ‘비상계엄 선포안’을 안건으로 오후 10시17분부터 5분간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열렸다고 행정안전부가 대통령실의 자료 회신을 근거로 이날 밝혔다. 대통령실은 행안부에 안건 자료를 주지 않았고, 회의 발언 요지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회신했다.
한 총리는 계엄에 반대하고 윤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국무위원들을 소집했다고 주장했다. 3일 밤 오후 9시 무렵부터 국무위원들이 하나씩 모였다. 늦게 도착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3일) 오후 10시10~15분 사이에 회의장에 들어갔다”며 “상황을 몰라서 옆 분에게 무슨 회의를 하는지 여쭸다. 딱 두 글자 들었다. ‘계엄’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반대와 우려를 표시했다는 면피성 입장으로 일관했다. 박성재 법무장관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총리 이하 모든 분들이 여러 이야기와 행동으로 다양한, 막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말씀은 분명히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한 총리를 향해 “대통령 탄핵되고 본인들 감옥 갈 것 같으니 반대했다고 입을 맞추느냐”고 질타했다. 이 의원은 이어 뒤에 앉은 국무위원들을 향해 “명확하게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 2명만 손을 들었다. 한 총리는 “저는 대통령께 반대한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법 행위에 반드시 필요한 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없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한 총리는 조국 조국혁신당 의원이 “비상계엄 선포도 그 절차(부서)를 거쳤느냐”고 묻자 “전혀 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비상계엄을 국회에 통지하지 않은 것도 불법’이라는 윤건영 의원의 질의에 “(통고를) 못했다”고 했다.
한 총리는 계엄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요구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 서 의원은 국무위원들을 향해서도 모두 일어나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국무위원 대부분 일어났고, 절반가량은 어정쩡한 자세로 머리를 숙였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