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탓으로 일관한 윤 대통령의 허점 가득 내란 혐의 ‘변론요지서’

박순봉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내놓은 대국민 담화는 내란 혐의 피의자의 변론요지서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는 법적 절차를 따랐고, 야당 횡포에 대한 경고용 통치행위였을 뿐이라는 자기 변명으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주장들은 법적으로 모순되며, 계엄군 지휘부 등 관련자들의 증언과도 배치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첫 번째 이유로 ‘야당 횡포’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정부 관계자들에 대해 연이어 탄핵을 추진하고 예산안을 삭감해 국정이 마비됐다고 표현했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 민주당이 자신들의 비리를 수사하고 감사하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사들,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을 탄핵하겠다고 하였을 때, 저는 이제 더 이상은 그냥 지켜볼 수만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로 든 탄핵안 추진, 예산안 삭감 등은 모두 법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행위다. 헌법은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을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와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우’로 규정한다. 적과의 교전, 사회질서의 교란, 사법 기능의 마비 등과 야당의 조치들은 전혀 관련이 없다.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야당을 향해 국회를 일방 운영했다고 정치적 비판을 할 순 있어도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이 또다른 계엄 선포의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 부실을 꼽았다. 윤 대통령은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은 비상계엄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로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선관위를 신뢰할 수 없다면 윤 대통령이 승리한 20대 대선에도 정당성의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자 통치행위라는 논리를 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선 “과거 독재 시대 때의 논리”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건을 계기로 비상계엄 선포도 위법성이 명백한 경우에는 요건의 충족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독재 시대에 포획됐던 법원의 논리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나”라며 경고성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병력도 소규모였다고 주장했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규모 병력이라도 국회에 군대를 투입한 것은 삼권분립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 제44조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보장하며, 국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적었다. 박 교수는 또 “‘짧은 시간의 계엄’이라도 그 자체로 헌정질서 파괴 행위가 될 수 있다”며 “헌정질서 파괴는 지속시간의 장단으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내란 혐의를 반박하는 근거로 비상계엄 선포가 경고용이었다고 주장했다. 병력은 질서 유지가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자들의 증언은 이를 반박하고 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지난 10일 국회에 출석해 윤 대통령이 전화를 통해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곽 전 사령관은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소 3개, 민주당 당사 등 6곳에 대한 장악을 지시받았다고도 증언했다. 윤 대통령이 군과 경찰 지휘관들에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야 정치인들을 체포·구금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저는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하였고, 그래서 국회의원과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국회 마당과 본관, 본회의장으로 들어갔고 계엄 해제 안건 심의도 진행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 주장도 계엄사령부 포고령 및 조지호 경찰청장의 증언과 배치된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돼 있다.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이 포고령을 근거로 국회의원 등 관계자의 국회 출입 통제를 지시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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