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동남아
현시내 지음
한겨레출판 | 288쪽 | 2만1000원
소위 ‘먹방’만 활기를 띠는 것은 아니다. 서점가에도 음식에 관한 책들이 쏟아진다. 요리책과 미식여행 에세이, 역사나 과학과 음식을 엮은 각종 인문·교양서도 넘쳐난다. 일본의 라멘이나 스시부터 프랑스의 치즈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식문화에 관한 책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동남아시아 미식문화에 관한 책은 흔치 않다. 수많은 사람이 찾는, 가깝고 친숙한 여행지인 데다 6억명이 넘는 인구가 모여 있는 거대 문화권임에도 우리의 지식은 한정적인 편이다. 기껏해야 베트남 쌀국수, 태국 팟타이나 쏨땀, 인도네시아 나시고랭 정도 아닐까.
모처럼 동남아시아 미식문화에 흥미롭게 접근한 책이 나왔다. 동남아시아 지역학을 연구해온 서강대 동아연구소 현시내 교수가 쓴 <미식동남아>다. 요리 하나에는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 문화, 역사 등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파파야로 만든 샐러드인 ‘쏨땀’은 태국요리로 알려져 있지만 기실 그 기원은 라오스다. 국내에서도 가장 흔히 먹을 수 있는 동남아시아 음식으로 꼽히는 것은 베트남 쌀국수다. 이탈리아 스파게티만큼이나 쌀국수가 세계화된 이면에는 제국주의 통치와 이념대립, 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있었다.
특정 음식의 종주국이 어디인지를 두고 기싸움하는 현상은 어느 지역에서나 왕왕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말레이 문화권 국가 사이에서는 나시고랭 종주국 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였던 리오 퍼디난드는 2016년 싱가포르를 방문한 길에 나시고랭 사진을 ‘로컬 음식’이라는 설명과 함께 X(트위터)에 올렸다가 인도네시아 사용자들에게 비난을 받고 급기야 ‘동남아시아 음식’이라고 정정해야 했다. 24가지 대표 메뉴를 통해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