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外交萬思]절벽 위에 선 대한민국

오호통재라!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한 계엄 시도는 그가 추구한 “글로벌 중추구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한 당당한 외교안보 정책을 내세웠다. 윤 정부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바이든 초기의 국제정치 인식을 세계에서 가장 전폭적으로 수용하였다. 중국과 대등하고 당당한 외교를 펼치겠다고 하면서, 중국이 핵심이익이라 주장하는 대만 및 남중국해 문제를 수시로 언급해 중국을 자극하였다. 유엔 헌장에 반하여 영토를 불법적으로 침략한 러시아와의 대립도 주저하지 않았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본인도 직접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자유진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자 하였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과 외교적 갈등 중이던 역사 사안들에 대해서는 백기를 들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을 표방하면서 갈등을 노골화하는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였고 평양에까지 드론을 날려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러한 윤석열 외교에 호평이 이어졌고, 대신 러시아, 북한, 중국과의 관계는 거의 역대 최악 수준으로 나빠졌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윤석열 정부는 계엄 시도로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가 계엄을 선포하면서 보여준 선악적이고 냉전적인 세계관은 시대착오적이다. 동맹인 미국의 백악관과 전임 주한 미국대사들조차 강하게 공개 비판하는 지경이 되었다. 향후 한·미관계가 걱정이다. 그 외교안보·경제적 비용은 계산하기도 어렵다. 최고의 소프트 파워를 자랑하던 한국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조롱과 우려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1980년대 이전으로 돌아갈 국가 이미지는 물론이고 당시 민주화운동 사례와 같이 엄청난 국민들의 희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윤 정부 외교안보는 시대착오적

윤석열의 외교안보 정책은 시대착오적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보수의 불만과 해법을 극단적으로 담은 정책이었다. 윤의 초기 정책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판단이 존재하였다. 첫째, 미·중 경쟁에서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이고 우월하다. 기회주의적 행보보다는 가치외교에 편승하고 미국에 올인하는 것이 국익이다. 둘째, 강한 한·미 동맹이 존속하는 한 중국은 한국을 경시하지 못하며, 중국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증대할 것이다. 셋째,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려면 선제적인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넷째,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 북한은 도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들은 오판이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가 그러했듯이 윤 정부는 자신들의 초기 판단이 그릇됐단 게 드러났음에도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거의 오기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그 비용은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미국조차 인정하듯 현 세계는 미국과 서방보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추이이다. 2022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A World Divided’ 보고서, 2023년 미국 ‘Hamilton Index(ITIF)’, 2024년 호주 전략정책연구소 ‘글로벌핵심기술 현황’ 보고서는 이를 뒷받침한다. 바이든 정부는 후반기 들어 가치외교를 더는 내세우지 않았다. 그럴수록 고립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는 이미 서방 주요 7개국(G7) 규모를 넘어섰고, 여기에 가입하려는 30여개국이 줄을 섰다. 한·러관계는 거의 군사적 충돌 직전이다. 북·러관계는 동맹 수준으로 강화되었고, 한반도 핵 사용에 대한 문턱은 전례 없이 낮아졌다. 경제안보 시대엔 경제이익을 수호하는 게 안보가 될 정도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획득하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일본은 이처럼 약화된 윤 정부에 외교·경제적 양보를 할 개연성이 거의 없다. 최근 국제정치의 핵심동력으로 떠오른 글로벌 사우스에서 한국의 위상은 부산 엑스포 유치 경쟁의 참패가 말해주듯 참담하다. 북한 핵미사일은 이미 고도화되어 기존 3축 체계로는 방어가 불가능하다. 중국의 최근 노골적인 대북 억제 정책이 아니라면 북한은 사실상 행동의 자유를 얻은 상태다. 한반도에서의 돌발사태가 핵전쟁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최대치다. 더구나 트럼프 2.0의 등장은 한·미 신뢰의 위기와 동맹 비용의 급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동맹보다 자강을 중심에 세워야

이번 계엄 선포로 무력화된 윤석열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무기력할 것이다. 윤석열 외교는 정글의 장으로 전화한 국제정치의 전쟁터에서 십자군의 깃발을 든 채 광야에서 처참한 상태로 홀로 선 모양새이다. 2025년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경제 환경은 급전직하로 악화될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단순한 약화가 아닌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기존 국제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지라도 그 비용은 대단히 클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국민들이 짊어진다. 국민들에게 상황을 소상히 알리고, 양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국민들을 뭉치게 하는 리더십이 존재한다면 그 나라는 살아남는다. 구한말 정치지도자들처럼 자신들의 안위만 고려하고 정치적 계산으로 일관한다면, 국민들은 더욱 분열되고 고통은 국민들에게 일임되면서 나라는 망국을 향해간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은 결국 나라를 팔아먹는 역할에 나서게 된다. 다음으로 국력은 자강, 동맹, 국제연대의 총합이다. 우리의 성공 신화는 기존 동맹 위주의 전략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자강을 중심으로 동맹과 국제연대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라는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이 대표적으로 이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이 전략에 익숙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역량과 국제정치·지정학적 위상에 대한 면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당파적으로 정답을 가진 해법은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현재 ‘오호통재’의 상황이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바뀌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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