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노벨상, 노자, 비상계엄 그리고 한강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노벨상, 노자, 비상계엄 그리고 한강

입력 2024.12.12 20:35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노벨상, 노자, 비상계엄 그리고 한강

마지막이다. 달력도 한 장 남았다. 세상의 모든 일, 어김없이 끝을 향해 간다. 작년부터 말석에 앉아 배우던 <노자>도 완독이 코앞이다. 마지막 81장을 앞두고 이 문장을 다시 만났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해도 빠트리는 법이 없다. 어디 꼭 그런가. 세상에 죄와 벌이 무성하지만, 죄만 벌어지고 그에 합당한 벌은 어디에 있는가. 왜 세상은 잔인한 자들이 활개치는가. 왜 악독한 자들을 내버려 두는가.

수십 년 전, 광주를 덮친 비극만 해도 그랬다. 학살의 주범들은 그러고도 떵떵거리며 오래 살더라. 지금도 후손들은 은닉한 쩐으로 잘 먹고 잘 살더라. 쳇, 하늘의 그물을 믿으라고? 저 문장의 효력을 의심했었다. 공중에 아득한 눈발 성글게 날릴 때 하늘은 그물을 슬쩍 보여주는가. 그중에 가장 큰 눈송이 골라 혀끝에 얹으며 중얼거리기를, 고작 연약한 한해살이풀이나 꾸짖듯 흠뻑 덮어씌우고, 자란 죄밖에 없는 나무의 밑동이나 옥죄는 건가요?

아뿔싸, 이는 나의 짧은 소견에 불과했으니. 콩밥 먹다가 흐지부지 풀려난 그들을 단죄한 판결문보다도 더 우아하고 부드러운 말들로 죄는 벌을 받게 하였으니. 이제 그들의 업(業)은 언어의 감옥에 영원히 갇혀버렸으니. 말 없는 하늘은 결국 이렇게 ‘소년’을 보내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니. 늦은 밤 노벨상 중계를 시청하다가 퍼뜩 깨달았으니.

“폐하, 존경하는 노벨상 수상자, 신사 숙녀 여러분. 한강의 글에서는 흰색과 빨간색, 두 가지 색이 만납니다. 그녀의 많은 책에서 흰색은 화자와 세상 사이에 보호막을 그리는 눈(雪)이지만, 흰색은 또한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합니다. (…) 빛이 희미해지며 죽은 자들의 그림자는 벽 위를 계속 맴돕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으며 그 무엇도 끝나지 않습니다. 디어(Dear) 한강….”(노벨 문학상 시상 연설)

어쩌나, 소설의 내용이 다시 현실이라니! 비상계엄이라니! 하지만 모든 건 대단원을 준비한다. 끝내고 다시 시작한다. 사시(四時)는 명확하고 지금은 겨울이다. 봄을 기다리는 바깥은 충분히 춥다. 이 날씨를 덥다고 우기지 말라. 안 넘어지려는 자, 더 크게 자빠뜨리는 게 하늘의 도(道)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