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줄이는 집회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비상계엄령 뉴스를 접하는 와중에 충격적인 일이 터졌다. 얼마나 황당한 가짜뉴스가, 얼마나 삽시간에 퍼지는지 <체험 삶의 현장>처럼 겪는 중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날 우리 상점은 일찍 문을 닫고 국회로 출동했다. 재사용 용기에 리필하는 리필숍뿐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용기가 필요하니까. 한 명이라도 더 모여 민주주의를 위한 용기를 채워야 한다.

당일 국회 근처 지하철역이 무정차라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탔다. 국회 앞에 도착하니 실물 초는 거의 안 보이고 LED 촛불이나 응원봉이 대세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날로그 초를 꺼내 들었다. 화석연료 찌꺼기인 파라핀 양초 대신 밀랍초를, 초에 꽂는 종이컵 대신 종이팩을 사용했다. 우리 상점은 재활용을 위해 종이팩 등 10여종의 폐기물을 수거하는데 그 양이 월 500㎏ 정도 된다. 그래서 쓰레기 재료가 많다. 현수막 대신 자투리 천으로 깃발을 만들고 고장 난 우산의 봉 대에 깃발을 고정했다. 바짓단을 줄인 천에 ‘탄핵’이라고 수놓았다. 우리는 쓰레기에 진심이라서 어디에서든 쓰레기를 줄이고 싶다. 우리가 보기를 바라는 민주주의의 일상을 ‘나중’으로 미루지도 않을 것이다.

한자가 쓰인 종이팩이 문제 될지 몰랐다. 우리가 종이팩 촛불을 든 모습을 캡처한 극우파들이 ‘충격 단독: 촛불시위에 등장한 중국어 우유팩’이라며 우리를 나라 말아먹으려고 집회에 침투한 중국인 혹은 간첩으로 몰았다. 상점엔 중국인이냐는 연락이 쇄도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한국말 잘하는 화교라면서, 얼굴과 신상을 털어 ‘조리돌림’한다. 심지어 그 종이팩은 중국 것도 아니다. 상점 직원이 대만 여행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실대로 여행지에서 쓰레기를 들고 왔다니까 장난하냐고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댄다며 더 난리가 났다.

실은 윤석열 정부의 환경정책이야말로 쓰레기였다. 자원재활용법에 명시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전국 시행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일회용 컵 보증금제 여론을 부정적으로 조작했다. 법에서 금지한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을 단속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시행 예정이었던 장례식장 일회용품 사용금지, PVC 랩 전면 사용금지, 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등을 줄줄이 철회했다. 그 결과 PVC 랩에서는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가 검출되었고 종이 빨대 업체들은 도산했다. 170여개 국가 대표들이 모인 부산 국제 플라스틱 협약 회의장에서는 인터넷이 안 터졌고 앉을 자리조차 부족했고 일회용 컵에 음료를 내주었다. 국제회의장에 펼쳐진 ‘제2의 잼버리’ 사태처럼 총체적 난국이었다.

처음에 어안이 벙벙했던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그런데 중국인이 무슨 잘못인지 ‘현타’가 왔다. 혐오 발언에 말려들지 않아야겠다. 그 시간에 창의적으로 각종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스페인어, 타갈로그어, 아랍어로 쓴 피켓이나 응원 도구를 준비해야겠다. 그럼 만국의 간첩이 되려나. 여하튼 쓰레기를 줄이는 집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콘서트 응원봉을 활용하고 쓰레기로 피켓을 만들고 LED 촛불의 배터리를 교체하고 텀블러를 챙겨서 나오자. 그래도 쓰레기가 나온다면 각자 집으로 가져오자. 그렇게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라이프스타일이 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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