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부가 불확실성으로 경제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지난달만 해도 “회복세가 유지되고 있다”고 했던 경기에 대한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국책연구기관들도 잇따라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1%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태에서 정국 불안이 겹치면서 한국경제가 이중고를 겪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13일 ‘12월 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기업 경제심리가 위축되는 등 하방 위험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언급에서 ‘불확실성 확대’로 한 발 더 나아갔다. 하방 위험이 커진다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올들어 처음이다. 정국 불안으로 연말 특수가 사라지는 등 내수 부진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완만한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던 평가는 사라졌다. 기재부는 지난해 말부터 ‘경기 회복흐름 조짐이 있다’ ‘경기 회복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계엄 사태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도 판단을 바꿨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귀범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워낙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 경기회복세라는 판단을 ‘불확실성 및 하방 위험 증가’ 표현으로 대체했다”면서 “최근 불확실성이 커진 데에 따른 여파가 수치적으로 확인되려면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도 했다. 기재부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경제는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한 가운데 통상환경 변화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증대됐다”고 평가했다. 수출은 전년동월 대비 1.4% 증가해 견조한 흐름이 유지되고 있으나, 계엄 사태 여파로 정상급 외교를 비롯한 통상대응이 사실상 중단되고 차기 미국 정부와의 소통에 차질이 생기면서 그에 따른 타격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표에서 계엄 사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다만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컨트롤 타워로 관계기관 공조를 통해 대외신인도를 확고하게 유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엄 사태 이후 해외투자자들이 국내 정치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1%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이라며 “연말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소비심리가 악화하고, 기업들도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전까지 투자를 꺼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 채널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향후 트럼프 정부 들어 환율관찰대상국 지정 등 이슈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탄핵 정국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해야한다”고 했다.
국책연구기관도 탄핵 정국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연구원은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탄핵 국면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으로 국가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환율 불안 해소를 위해 정부와 국민연금이 맺은 외환스왑 거래 기한과 한도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